뇌전증 앓는 우즈베키스탄 청년 '하요트 롯'
태어난지 3개월만에 뇌수막염 걸려
경제적 어려움으로 수년간 방치돼
충북대병원 '나눔진료'사업 선정
"병 나아 멋진 화물운전사 되고파"

▲ 뇌전증을 앓고 있는 하요트 롯(가운데)씨가 충북대병원에서 실시하는 나눔진료 대상자로 선정돼 재활의학과에서 진료를 받고 있다. /권보람기자

[충청일보 이주현·황유미기자]"우리 아이, 완치 가능한 거죠? 그렇다고 말해주세요. 제발…."

우즈베키스탄에서 건너온 효심존 씨(45)의 장남 하요트 롯 군(20)은 '뇌전증' 환자다. 뇌전증은 뇌 신경세포 이상으로 극도의 흥분상태가 되면서 경련, 발작 등이 되풀이되는 병이다. 멀쩡하던 아이가 갑자기 쓰러져 온몸을 떨고 거품을 물며 발작하는 것을 봤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충격과 공포로 일관되기도 한다.

효심존 씨는 지난 1995년 하요트 롯이 세상에 나왔을 때만 해도 마냥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3개월 때부터 아이의 오른쪽 손목이 90도로 구부러지고, 팔과 다리가 뻣뻣해지는 등 이상한 증상을 보였다. 병명은 뇌수막염.

그러나 경제적인 이유와 열악한 자국의 의료 환경 탓에 제대로 된 치료 없이 수년 가까이 방치될 수밖에 없었다.

하요트 롯의 병은 점차 악화됐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유명하다는 병원은 다 가봤지만 큰 차도는 없었다. 손톱만 한 약만 내줄 뿐이었다. 그러더니 6년 전부터 뇌전증을 앓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이상 증세를 보이며 공격적으로 변한 하요트 롯이 낯설고 무서웠다.

그러던 중 우연히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한 한국 의사로부터 "치료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충청일보에 알려졌고, 자국에서 치료가 힘든 외국인을 충북도내 병원으로 초청, 진료하는 '나눔진료' 사업 대상자로 선정됐다.

9일 충북대학교병원은 정확한 진단을 위해 입원 절차를 신속히 처리한 뒤 MRI와 혈액 검사 등을 실시했다.

뇌전증 검사와 치료는 김원섭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재활치료는 방희제 재활의학과 교수, 신경치료는 신동익 신경과 교수가 맡았다.

진료실에 들어간 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방 교수와 김 교수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뇌병변으로 인한 우측편마비로 보입니다. 치료가 쉽진 않겠어요. 초기에 치료했다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텐데. 일단 불편한 다리에 보조기를 착용시키고, 근육과 신경이 경직된 부위에 보톡스를 풀어 넣어주면 상황은 나아질 것 같네요."

"그래도 좋은 약을 먹고 있었네요. 그런데 복용량이 너무 적었어요. 이건 늘리면 되는 거고. 일단 입원해서 MRI 촬영을 해봅시다. 뇌파에 따라 다른 약을 써야 할 경우가 있거든요. 우리 병원이 학회에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병을 완화할 확률이 80% 정돕니다. 상황이 낙관적이진 않죠?"

모처럼 만에 이들 부자의 얼굴에 미소가 띠었다. 하요트 롯은 병이 나으면 아버지를 따라 멋진 화물 운전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 몸으로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쯤 김종석 국제진료팀장이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진료도 끝났으니, 해장국 한 그릇 하러 갈까."

하요트 롯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효심존 씨가 또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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