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작가 (18) 이소라


실용성과 창의가 조화를 이루고, 세상의 다양한 삶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문화코드가 무엇일까. 어느 시대건, 어느 세대건 당대의 문화와 정신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콘텐츠가 있겠지만 세월이 변해도, 아니 세월이 지날수록 진가를 발휘하는 것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한국의 보자기다.
필자에게는 보자기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있다. 누이는 어머니 곁에서 밤이면 밤마다 수를 놓았다. 호롱불을 가운데 두고 섬섬옥수 고운 손길로 한 땀, 한 땀 정성과 사랑을 심었다. 그러기를 며칠 계속하면 베갯잇에 알록달록한 한 마리 학이 날고 모란꽃이 피어났다.
어느 때는 여러 개의 조각보가 모여져 책보나 괴나리봇짐이 되기도 했고 누이가 나들이 할 때 사용하는 고운 보자기(면사보)가 되기도 했다. 밖에 나가 친구들과 거칠게 논 다음에는 항상 무릎이나 팔꿈치에 큰 구멍이 나고 찢어지게 마련인데 그 때마다 어머니는 예쁜 천을 대고 바느질을 하셨고 오롯하게 새 옷이 되곤 했다.
그 때 만난 한국의 오방색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것은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너무 아름다워 꿈결에서도 줄곧 나타나던 곱디고운 누이의 얼굴을 닮았다. 세상 곳곳을 다녀봐도 그만한 색상과 그만한 감동을 주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오방색과 조각보 만나 시대의 아이콘 탄생

그런데 그토록 꿈결 같기만 하던 오방색이 젊은 작가의 손길을 만나 조각보라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태어났다. 화제의 주인공은 섬유예술가 이소라씨. 이씨는 조각보야말로 실용미학의 정점이자 다양한 삶의 형태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조각보야말로 어머니의 사랑이자 디자인이며 예술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10년째 조각보를 테마로 한 섬유디자인에 몰입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하와이 호노룰루미술관에서 열린 ‘한·미보자기 특별전’에 한국작가로 참여했으며, 10여 차례에 걸쳐 전국 공모전에서도 입상하고 섬유강사로도 활약하는 등 그의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다. 아니, 한·미보자기특별전에서는 100여 명의 출품작가 중에서 유일하게 그녀의 작품이 하와이 호노룰루미술관에서 컬렉션 및영구 소장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이씨는 대학에서 섬유를 전공하지 않았다.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뒤늦게 염색과 바느질에 매력을 느껴 직장까지 팽개치고 청주대학교 산업대학원에서 산업공예를 배운 것이다. 그리고 천염염색의 전통적 가치와 기술을 익히기 위해 ‘고래실 천연염색교실’에서 수강을 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하기 시작하게 됐다.

실용과 장식의 미로 가득한 작품세계

이씨의 작품세계를 알려면 자연의 이치와 염색 기술부터 이해해야 한다. 그녀가 직접 자연에서 염료를 채취하고 옷감에 물들인 뒤 한 땀 한 땀 정성을 가득 모은 조각보를 만들기 때문이다.
본인이 염색하지 않은 재료는 애초부터 거들떠보지 않는 고집스러움도 있다. 그래서 그녀는 겨울 한 철을 빼곤 산과 들을 찾아다니며 각종 풀과 나뭇잎을 채집한 뒤 자신만의 노하우로 천조각에 물감을 입힌다. 채집에서부터 끓이고 재우며 물들이는 과정이 단순한노정이라 할 수 없다. 그녀만의 색감을 얻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데이터, 밤샘작업, 절제된 생활 등 극복해야 할 과제가 많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더 큰 열정과 노력, 고단한 과정이 필요하다. 각각의 색감을 선별한 뒤 몇날 며칠을 쉬지 않고 바느질해야 하나의 조각보로 탄생한다.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3개월간 이부자리에 들어가지 못한 적도 있다.
그 결과 전혀 다른 색상, 전혀 다른 천조각들이 하나가 되면서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자유롭되 절제된 멋, 화려하지만 고고하고 품격 높은 자태, 실용성과 장식의 미가 함께 공존하는 조각보로 탄생하는 순간이다. 몬드리안이나 클레의 회화작품을 닮기도 하지만 한국의 독특한 정서와 멋이 있다. 섬섬옥수 정성 가득 담았기 때문이며,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손재주가 묻어있기 때문이며, 심연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지금 전통과 현대의 조화, 실용과 탐미가 함께 하는 작품에 몰입중이다. 실용화되고 유용하게 쓰이지 않는 조각보는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다양한 장르와의 접속을 시도 중이다. 예컨대 전통 창살문과 조각보를 연계시켜 멋스러운 가구로 탄생시켰으며, 전통문양을 활용한 각종 상패 또는 트로피로도 인기를 얻고 있다.
청주시우수건축물대상 상패를 제작한 바 있으며 최근에는 2008청주공예문화상품대전 주요 수상작가의 상패제작을 의뢰받았다. 상패에 조각보가 들어가면 색감과 미적 균형감각이 뛰어날뿐 아니라 세월의 이슬을 먹을수록 더욱 그윽해진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긴장감과 새로움으로 미적세계 탐구

이처럼 한국인의 문화와 한국인의 삶이 누군가의 느낌과 열정을 만나면 새로운 문화콘텐츠가 되고 브랜드 파워가 된다. 느낌이라는 것은 내면에서 나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침잠하는 것이고, 열정은 그 느낌을 새롭고 창의적인 아이템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힘을 일컫는다.
여기에 디자인 감각이 첨가되면 최고의 상품으로 인정받는다. 우리는 이것을 하이터치문화라고 부른다. 전통적이지만 혁신적인 가치를 만들려고 하는 노력, 긴장감과 새로움을 불러일으키는 예리한 감수성이 곳곳에 묻어있는 상품을 만들려는 열정이 필요한 것이다.
국적불명의 디자인이나 족보도 없는 상품을 만들려고 하는 노예의식에서 벗어나 우리의 신화와 전설, 그리고 그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정신적 가치를 표현하려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이제 이소라작가의 보자기에 대한 열정은 실용미학으로, 신화와 사랑으로, 디자인으로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보자기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브랜드로 세계만방에 사랑받게 될 것이고 그 중심에 섬유예술가 이소라가 있을 것이다.
/변광섭 객원논설위원(청주공예비엔날레 총괄부장)

[작가약력]
▲1968년 충북 음성 출생 ▲홍익대학교 도예과 졸업 ▲동아문화센터 조교 ▲제1회 관악미술대전 입선(1995), 경기도자엑스포 생활도자전 우수상(1999) ▲근현대작가 8인전(2001·일본 마치코), 음식이 있는 그릇 이야기전(2001·서울 갤러리sun), 우리 도자의 모습전(2001·영은미술관), 우리그릇전(2002·세라믹아트갤러리), 충북공예-열정에 호흡하다전(2008·한국공예관) ▲現 음성 석인리에서 도예공방 운영.)
< 작가 프로필>
◇1967년 충북 청주 출생 ◇청주대학교 산업대학원 산업공예과 졸 ◇제2회 대한민국 문화관광상품대전 섬유부문 은상, 제2회 청주공예문화상품대전 섬유부문 동상, 2003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섬유부문 입선, 제4회 청주공예문화상품대전 입선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지역작가전, 고래실 자연염색전, 땀&땀 자연염색전, 충북의 젊은작가 이소라초대전, 충북아트페어전, 한미보자기특별전 ◇청주시한국공예관 천연염색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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