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교류 '굵직한 성과'… 외교 베테랑

▲ 정태익 한국외교협회 회장

[서울=충청일보 이득수기자]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4강들이 국익에 따라 새로운 짝짓기에 나서 국제질서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면서 우리 정부의 외교력이 도마에 올랐다. 우리만 고립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을 즈음에 우리나라 외교사에 뚜렷한 공적을 남긴 정태익 한국외교협회 회장(72·사진)을 만났다. 정 회장은 충북 청주가 고향이다. 교동초교와 청주중을 거쳐 고등학교는 서울의 명문 경복고를 졸업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공군장교로 군무하던 중에 외무고시 2회(1969년)에 합격해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주요 직책으로는 외무부 차관보, 외교안보연구원장,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김대중 대통령 시절)을 지냈고, 주 이집트·이탈리아·러시아 대사 등을 역임했다. 지난 2007년 주 러시아 대사로 근무하던 중 32년간의 외교관 생활을 명예롭게 은퇴한 정 회장은 이후 경남대 초빙교수, 단국대 석좌교수를 지냈고, 작년 1월 20대 한국외교협회장에 취임했다. 

한국외교협회는 현역과 퇴역 외교관 3000명을 회원으로 둔 비영리 단체로 지난 1971년에 창설됐다. 초대 회장은 임병직 전 외무장관, 2대는 정일권 전 국무총리, 3대는 이원경 전 외무장관이 맡았다. 회원 친목도모와 함께 외교정책 연구와 자문 등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 외교사에 남긴 정 회장의 가장 큰 업적은 이집트와의 수교를 성사시킨 일이다. 1993년 주 카이로 총영사로 부임한 그는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던 이집트와 북한간의 혈맹관계를 파고들어 한-이집트 수교를 이끌어냈다. 이집트가 이스라엘과 중동전쟁을 벌일 당시 북한 전투기 조종사가 참전했다 전사하는 바람에 이집트와 북한은 혈맹관계로 발전해 한국에게는 접근을 허용하지 안았다. 아프리카의 관문이자 중동 아랍의 맹주인 이집트의 외교 장벽을 넘는 것은 오랫동안 한국 외교의 숙제였다. 이 일을 카이로 총영사가 2년만에 해낸 것이다.
 

▲ 2000년 6월 로마 교황청에서 교황 요한바오로 2세를 알현했다.

"외교관으로서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이었고, 김영삼 대통령 때 외교의 최대 업적으로 꼽혔죠. 그 인연으로 초대 주 이집트 대사를 맡기도 했고요. 또 청와대 외교비서관 재직 시절 북방외교 실무자로서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이 만남을 성사시키고, 중국 소련과 수교하는데 관여한 일도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북방외교에 성공함으로써 우리나라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상당부분 치유했고, 대륙으로 진출하는 기회를 잡게 됐다. 안보 외교의 중심축 역할을 수행한 정 회장은 이후 주 러시아 대사 시절에는 한국과 러시아 사이에 가장 큰 이슈였던 러시아에 대한 우리의 채권(차관) 회수 문제를 해결해 러시아와의 관계 정상화 기반을 마련했다. 
 

▲ 2002년 3월 모스크바 크레믈린 궁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했다. 왼쪽에서 두번째가 정태익 대사, 세번째가 푸틴 대통령.

"러시아에 차관 30억 달러를 주기로 했다가 실제로는 절반인 15억 달러를 집행한 것인데 문제를 해결했다는 얘기는 상환계획, 이자율 등 모든 조건에 타결을 보고 그 스케줄에 따라 러시아가 갚고 있다는 겁니다. 약 3분의 1 정도는 국제관례에 따라 우리가 탕감해줬습니다."
 

또 부지 확보 문제 등 어려운 과정을 마무리 짓고 모스크바에 한국대사관을 신축한 것도 정 회장이 일궈낸 일이다.
 

러시아와의 이런 인연으로 정 회장은 러시아에 거주하고 있는 코리안 디아스포라, 즉 고려인(카레이스키)들과 가깝다. 최근에도 광복70년 분단70년을 맞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고려인단체 주최하는 세미나에 초청받아 강연을 다녀왔다.
 

"OECD 가입이나, 세계 12위 경제대국가 됐다는 등 한국의 성장을 나타내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소득 2만달러 인구 5000만명 이상인 국가인 '2050 클럽'에 가입했다는 겁니다.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6개 나라 밖에 없었는데 우리가 7번째로 가입했어요. 경제기적, 민주화를 이룬 기적 등 종합적으로 얘기하면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국가로 성장한 거죠. 이제 우리의 과제는 통일입니다. 그런 통일을 어떻게 이뤄야 하느냐를 깊이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정 회장은 통일이라는 국가 목표를 위해서 탈북자를 포함한 해외에 있는 코리안 디아스포라들도 모두 동참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통일대박이라고 얘기해놓고는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잖아요.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2가지 중요한 일을 해야 하는데 국방과 외교가 그것입니다. 국방과 외교를 통해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뤄야 합니다. 통일전선에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4대 강국인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와의 균형있는 외교가 그래서 중요하죠."
 

이런 점에서 현 정부의 외교정책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균형 외교가 미흡하다는 것이다. 강대국은 강대국과 친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이 한국에 잘 해주는 것 같지만 일본과 더 가깝고, 일본과 할 말이 더 많은 겁니다. 시진핑이 일본을 대하는 것과 한국을 대하는 것과는 비중이 다릅니다."
 

그런 외교의 기본 원리를 알아야 하는데 요즘의 정치인들은 이런 기본적인 원리를 모르는 것 같다고 지적한다.
 

정 회장은 외교업무에 관한 역대 대통령들의 스타일도 털어놨다. "노태우 태통령은 참모들이 써준 보고서를 꼼꼼히 읽고 잘 소화하는 스타일입니다. 외국 정상들과 만나서도 임기응변까지 발휘해가면서 잘 해 넘겼어요. 그래서 북방외교가 성공을 거둔 겁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아주 꼼꼼해요. 정독을 하고, 메모까지 합니다. 방대한 내용을 다 메모하기 어려우니까. 수첩에 중요한 안건, 키워드를 적고 정상회담 테이블에 펴놓고 보면서 얘기합니다. 실수가 없고 빼먹는 것도 없었어요. 김영삼 대통령은 적어줘도 잘 소화를 못하는 편이고 반면에 노무현 대통령은 아예 읽어보지도 않는 타입이죠. "
 

정 회장은 박 대통령의 외교에 대해 너무 과거 문제에 매몰되는 것 같다고 평했다. 그는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은 일본을 용인하고 활용함으로써 경제발전을 이뤘고, 미국은 과거 적국이었음에도 일본 수상을 잘 대접해주고 활용하고 있는데, 우리가 과거문제에 너무 치우치는 건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기회는 아직 있어요. 오는 6월 한일 수교 50주년 담화 발표에서 '과거문제도 만나서 얘기해보자'고 해야 합니다. 방점은 미래에 둬야 합니다. 외교 라인도 박 대통령의 생각만 따라갈 것이 아니라 상황을 올바로 인식하도록 과감히 조언해야 합니다."

▲ 2001년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 사무총장을 예방해 신임장을 제정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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