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탁 충북보건과학대 교수

1년 전 4월은 너무도 잔인했고, 아직도 여전히 잔인한 달로 각인돼 있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과 세월호 추모 현수막이 겹쳐져 피지도 못 하고 져버린 젊은이들 생각에 잔인하게 느껴진다. 지나온 1년, 우리는 고통 속에 신음하면서 먼저 간 넋들을 위한 각종 추모가 이어졌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사회 시스템을 만들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좌·우, 여·야 둘로 갈라져 갈등과 반목을 증폭시켰다. 아픈 과거가 치유되는 4월이 아니라 생채기는 커져만 갔고 세월호는 그렇게 세월 속에 묻혀 갔다.

자신의 입장에서 색안경을 쓰고 보면 결론은 다를 수밖에 없다. 아울러 남에게는 엄격하고 자신에게 관대하면 잘못을 인정할 수 없고 더 큰 재앙은 되풀이 된다. 북송(北宋) 말엽에 유변공(劉卞功)은 조정의 부름에도 벼슬을 싫다 하니 황제가 그에게 고상(高尙)이란 호를 내려줬다. 유변공은 아무런 말도, 행적도 남기지 않아 고상하다 추앙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그는 세상을 경계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말 한 마디를 남겨 고상함의 극치를 더했다. '사람들은 욕심으로 자신을 죽이고, 재물로 자손을 죽이고, 정치로 백성을 죽인다' 는 말이다. 후세 사람들은 이 구절을 끌어다가 자신을 경계하는 좌우명으로 삼기도 하고, 남을 비난하는 도구로 이용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사람이 잘못이지 욕심이나 재물, 정치가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사람이 욕심을 부리고, 무리하게 재물을 모으고, 얄팍한 정치를 펼치면서 자신의 어리석음이나 고집 때문에 일을 망쳐 폐해를 끼칠 뿐이다. 아집과 독선에 빠진 정치적 신념이 천하와 후세를 어지럽혀 해악을 끼친다는 사실을 자각한다면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나 좌와 우의 대결로 파국을 향해 마주 달리는 어지러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어느 서구의 시인이 가장 잔인한 달이라 묘사했던 4월이 또 그렇게 지나갔다.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고통을 나누려 가슴 아파 했고, 국민을 안전하게 지켜줄 국가의 의무를 논하며 재발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와 실천을 갈망해 왔다. 그러나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다. 1년이 지난 아직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 하는 것은 자신을 경계하지 못 하고 아집과 독선에 빠진 정치적 신념 때문은 아닐까? 그 결과로 유사한 사고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근본 원인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고 상대적으로 고통 받고 만만해 보이는 사회적 약자들의 울부짖음에 눈 감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은 아닐까?

지난해 4월과 올해의 4월은 달라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잊지 않고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통한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지난 1년 동안 우리 사회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언제까지 잔인한 4월을 맞이할 수는 없다. 갈등과 분열보다 모두의 지혜를 모아 눈물을 닦아주고 서로를 위로하며 더 큰 희망과 치유를 향해 나아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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