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서울취재본부장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벌어진 '거부권 정국'으로 어수선하던 지난 25일 직전 국가보훈처장이 구속되고 현직 함참의장도 수사선상에 올랐다는 보도가 있었다.

구속된 김양 전 보훈처장은 백범 김구 선생의 친손자이며, 김신 전 공군 참모총장의 아들이다.

정부합동수사단(합수단)에 따르면 그는 2012년 해군의 차기 해상작전 헬기 도입 사업에서 특정기종(와일드 캣)이 선정되도록 힘써주는 댓가로 영국과 이탈리아 합작사인 아구스타웨스트랜드(AW)로부터 14억원을 수수한 혐의다.

그 날은 백범 서거 66주년일이었는데 그는  할아버지 추모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독립운동 가문의 후예가 방위사업과 관련해 부정한 돈을 받아 구속된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합수단은 또 군 서열 1위인 최윤희 합참의장에 대해서도 최 의장을 내사해왔고 이미 상당한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대체 해군의 차기 해상작전헬기 사업이 뭐길래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 사업은 기존의 대잠 헬기인 링스(Lynx)를 대체하는 것이다.

예산규모는 1조 3000억원이다.

천안함 폭침 사건으로 대잠수함 탐지 및 공격 능력 강화를 위한 사업이다.

합수단에 따르면 기종선정 담당자들은 시제품도 없이 육군용 헬기에 모래주머니를 달고 실시한 엉터리 시험성적서를 제출하는 방법으로 와일드 캣이 선정되도록 공작을 했다. 

이미 전·현역 영관급과 장성 등 7명이 구속됐다.

정권 핵심부에는 이번 수사가 더 이상 진행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해군의 존립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에 맞닥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방산비리를 이적행위라고 비판하고 발본색원할 것을 지시했지만 이쯤에서 정치적 판단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흘러 나온다.

해군은 인재 풀(pool)이 얇아 지휘부를 교체할 인적 자원이 부족하다는 논리로 수사를 그만해야 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해군사관학교 출신이 주요 지휘부를 장악하고 있는 해군에선 선배 기수의 명령이 곧 법이다. 자정능력이 떨어지는 조직은 쉽사리 총체적 부패에 떨어진다.

우리 젊은이 47명의 희생으로 비롯된 사업인데 최고 지휘관들이 돈을 받고 엉터리 기종을 선택했다는 소식에 국민들은 억장이 무너진다.

그래서 수사는 끝까지 가야 한다.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고 우리 젊은이들의 억울한 희생을 막을 유일한 방법이다.

해군에서는 한달 전에는 통영함에 성능 미달 음파탐지기를 구매한 혐의로 전현직 장교들 14명이 구속됐고, 또 그 한달 전에는 AK-47소총에 뚫리는 방탄복 납품 부정사건이 터졌다.

방산비리의 사슬을 끊기 위해 사즉생의 각오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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