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가 22 이강효


▨ 반전의 미학이 주는 삶의 교훈

우리의 전통 도자기 중에 분청사기가 있다. 청자처럼 화려하지도, 고풍스럽지도 않지만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청자에서 보기 힘든 자유분방함과 파격, 그리고 소박하고 자연미 물씬 풍기는 미학적 완성품이라는 수식어도 따라 다닌다.
사실 청자와 분청사기는 모두 흙으로 만들어졌지만 분청사기는 흰 흙을 표면에 발라 무늬를 낸 것이 특징이고 퇴락한 상감청자에서 기법이 축적되어 만들어진 작품이다. 예술장르에서 흔히 말하는 기법의 축적이 막판에 큰 반전을 이뤄낸 것이다.
찻사발도 그렇다. 조선시대에는 밥그릇이나 국그릇으로 사용되었으며, 깨지면 개밥그릇이나 사금파리로 굴러다녀야 했던 것이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국보급 찻사발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우리의 찻사발은 자연스러우면서도 기품이 있고, 형태와 기법도 다양해 차를 좋아하는 후손들에게 가보로 물려주기까지 한다.
공포영화나 스릴러 가운데 최고의 시나리오에는 항상 기막힌 반전이 숨어 있다. 액션의 환탄지라는 닉네임의 ‘미션임파셔블3’은 음모와 반전의 혼재를 통해 관객을 2시간 넘도록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식스 센스'나 '유주얼 서스펙트'등은 충격적인 결말 덕분에 영화팬들 사이에서 최고의 반전영화로 사랑받고 있다.

23전 23승이라는 불패신화의 주인공 이순신도 그의 일대기를 엿보면 갈등과 위기, 그리고 반전의 연속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열세를 우세로, 위기를 기회로 만든 탁월한 리더십에 그의 매력이 있었던 것이다. '죽기를 각오하면 산다'는 명언은 반전이 주는 미학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 옹기, 분청사기, 민화의 새로운 가치찾기


이 땅에 옹기의 종류는 무려 250가지에 달한다.
고운 흙으로 만든 청자나 백자와 달리 작은 알갱이가 썩어있는 점토로 만들기 때문에 가마에서 소성될 때 점토가 녹으면서 미세한 구멍이 생긴다. 이곳에서 공기나 미생물, 효모 등이 드나들 수 있다고 해서 '숨쉬는 그릇'이라는 표현도 쓴다.

옹기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그대로 담고 있다. 시골의 장독대마다 다양한 형태의 옹기가 있으며 각종 발효식품을 저장하고 숙성하는 공간으로 애용해 왔다.
성주단지, 조상단지 등 우리의 소박한 토속신앙을 보여주기도 했으며 옹기의 크기와 모양에 따라 독(운두가 높고 중배가 부르며 키가 큰 것), 항아리(위아래가 좁고 배가 부른 것), 중두리(독보다 조금 작고 배가 부른 것)등 그 명칭도 다양하다.
분청사기는 분장과 무늬를 나타내는 기법에 따라 상감, 인화, 박지, 조화, 철화, 귀얄, 덤벙 등으로 다양하게 분류된다. 자유분방하고 활력이 넘치는 실용적인 형태와 십장생, 연꽃, 잉어 등을 비롯한 다양한 무늬를 거침없이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도장을 찍듯 반복해서 무늬를 새긴 인화기법과 상감기법은 항아리, 장군, 다완 등에 다양하게 사용되는데 한국의 자연미를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으며, 철화문은 회흑색의 저질 태토 위에 귀얄로 백토분장을 한뒤 철화로 자유분방한 문양을 빠른 운필로 나타내고 얇게 시유하게 되는데 자연의 미와 인공의 미가 조화롭게 표현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 순박한 분청의 멋스러움을 자유자재로 표현

도예가 이강효작가(48·사진)는 전통에서 만날 수 있는 옹기와 분청사기의 랑데부를 통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이 시대의 트랜드인 통합과 융섭, 그리고 전통의 가치를 혁신적으로 창조해 나가는 작업과정은 작가만의 톡창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필자가 지난 5월 캐나다 공방을 순례했을 때 몇몇 작가들은 한국의 이강효작가의 예술적 가치에 대해 입이 달도록 칭찬했다.
그의 분청사기는 거칠지만 부드러운 멋, 두 손으로 찻잔을 잡을 때와 입으로 느껴지는 따뜻한 감촉, 그리고 자연의 미가 작품속으로 투영되는 듯한 신비스러움까지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홍익대학교에서 도예를 전공한 후에 경상도 울주 옹기막에서 3년간에 걸친 옹기작업을 통해 기초 토양을 닦았다.
전통의 가치를 작품으로 표현하고 작가의 영혼을 작품에 심어주기 위한 고단한 과정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세계가 인정하는 작가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작가는 거친 옹기흙 덩어리에서 전통적인 기법으로 사각형태의 양감을 보여주며, 화장토와 투박한 귀얄로 속도감 있게 칠한 후에 손가락 혹은 대나무칼로 작가의 주변에서 느껴온 집과 자연에 대한 풍광들을 그려 보여준다.

이강효의 작업은 또한 전통민화에서 그 문양을 부분적으로 차용하고 있다. 부귀를 뜻하는 모란꽃이 흐드러진 가형(家形)분청합, 연꽃과 물고기그림의 분청 귀얄박지연어문 항아리에서도 옛 선조들이 원하였던 다남(多男)에 대한 생각들을 거칠고 힘 있게 그려낸다.
옹기, 분청, 민화라는 전통적인 모티브 속에서 편안한 느낌의 자유분방하고 활달한 선과 힘찬 조형으로 작가만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한다.
작가의 작품에는 흙내음과 자연의 향기로움으로 가득하다. 그의 다완이나 다기로 차를 마실 경우 물 흐르고 꽃 피어나는 숲속의 계곡에 와 있는 것처럼 신령스러운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쓰면 쓸수록 편하고 따뜻하며 아름답다. 오래된 친구 같은 느낌이랄까.
이강효 작가의 워크샵은 해외에서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의 워크샵 무대는 빠른 손놀림과 거칠고 투박한 기법의 조화, 그리고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퍼포먼스의 카리스마로 사람들을 압도한다.
흙으로 크고 작은 항아리를 빚는 과정 자체가 예술이고 철학이며, 삶이자 자연 그 자체이기에변화무쌍한 퍼포먼스를 보는 것만으로도 벅찬 감동을 억제할 수 없다.
2001년에는 미국 전역을 순회하면서 워크샵을 한 바 있다. 미국인들의 가슴에 한국의 혼과 공예적 가치를 심어준 것이다.
그의 작품은 영국의 british museum과 victoria and albert museum, 미국의 asian art museum san francisco 등 세계 주요 뮤지엄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등 매년 국내외 글로벌 전시회 초대작가로 참여하고 있다.
세계 도자사에 없어서는 안될 소중하고 값진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청원군 오창읍 호죽리에 작가의 작업장이 있다. 홍익대학교 동학인 부인 손경희씨와 함께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데 장작가마와 발물레를 작접 만든 뒤 전통의 기법을 자유자재로 소화하고 있다.
부부의 사랑과 열정 또한 아름답다. 부인은 섬세한 생활도자를, 작가는 거칠고 투박하면서도 한국적인 미를 터치하는 대작을 만들고 있다.
협력자로, 조언자로, 그리고 어시스턴트로 함께 하는 삶은 그 자체가 예술이다. 혼담아 예술로, 마음담아 생활로 몸소 실천하면서 행동하는 도예가 부부라는 닉네임이 어색하지 않게 들린다.
국내는 물론이고 외국의 작가들도 호죽리 공방을 문지방 닳도록 드나든다. 작가의 삶과 창작과정, 그리고 스튜디오의 따사로움을 느끼고 싶어서다. 그의 작품을 속에는 자연의 숨결과 그 속에서 미세한 에너지를 만날 수 있다. 옛 시골집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는 스튜디오 한 쪽에는 갤러리 겸 다방(茶房)이 있다.
녹차 향 그윽한 그곳에는 분청 항아리에서부터 다완, 다기세트 등 많은 작품들을 접할 수 있는데 작가의 내면세계와 오래된 시간 여행을 만낄할 수 있다. 우리 고유의 삶과 멋, 전통의 가치를 현대인의 생활에 오달지게 만날 수 있음을 체휼하는 공간이다.
/변광섭 객원논설위원(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총괄부장)

▨ 작가 프로필
◇홍익대학교 공예학과 졸업 ◇일본 도고갤러리전(2000), 일본 나노하나갤러리 2인전(2001), 이강효 찻사발전(2003·서울), 미국 뉴욕 통인갤러리전(2003), 미국 보스턴 pucker 갤러리전(2006), 한국전통공예 유엔본부특별전(2007) ◇2007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초대작가, 2008청주공예문화상품대전 심사위원, <충북공예, 열정에 호흡하다> 특별전(2008·한국공예관) ◇현 청원군 오창읍 호죽리에서 공방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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