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순 산외초 교장ㆍ수필가] 아침저녁으로 선선하다. 하루에도 서너 번 씩 샤워를 해야 견뎌내던 여름도 떠나가는 듯하다. 2015년 여름을 보내면서 나는 두 개의 깊고 푸른 눈물을 잊을 수 없다.
40여 년을 교단에 몸담다가 8월 말 정년을 맞이하는 교원들이 곳곳에 계시다. 요즘 간소화에 의거 정년퇴임식을 하지 않는데 직원들의 간절한 바람에 향수의 옥천 k교육장님이 퇴임식을 연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축하객 대부분이 초등학교 동기들이고 축사도 동기 대표, 사은사도 옥천에서 교직에 입문한 첫 제자가 해 소박하면서도 개구쟁이 친구들로부터 추앙받고 제자로부터 존경받는 진면목을 보여준 퇴임식이다.
문제는 마지막 퇴임사 순서인데 잘 시작하더니 조금 읽으신 후에 그만 눈물을 흘리시며 소년처럼 흐느껴 그 울음이 쉬이 멈추지 않는 것이다.
인생의 길, 교단의 길에서 생사를 함께 한 가족의 사랑은 물론 자신의 진정을 때로 몰라주었던 동료들에 대한 서운함도 곁든 눈물이 아닐까! 당황한 것은 오히려 축하객들이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챙긴 하얀 꽃무늬 손수건을 꺼내 살짝 건네 드렸다. 나오는 눈물은 막을 수 없는 퍼펙트 진실이기에 그 순간이 결코 퇴임에 누가 되지 않았다. 기념으로 건네주신 까만 긴 우산을 출입문에 세워둔 채 집에 들어와 거실에 누워 쉬려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누구일까 궁금하여 받아드니 귀에 익지 않은 젊은 여인의 목소리다.
"혹시 옛날에 가양에 근무하셨던 박종순 선생님이신가요? 저 **인데 기억나셔요?"
이름을 들으니 바로 기억이 났다. 우리 반 부반장으로 단발머리에 머리도 영리하고 특히 영어를 잘해 영어 발표대회에서 최우수를 했고 나도 덕분에 지도교사 상을 받은 추억이 있어 가끔 생각나던 제자였다.
내가 기억한다며 반갑게 응하니 몹시 반가우면서도 놀라는 목소리다. 문제는 잠시 후에 일어났다.
"선생님 왜 제가 전화했는지 아셔요? 그때 3학년 때 제가 그런 게 아닌데 도둑 누명을 쓰고 엄청 혼나고 아이들하고는 줄곧 왕따로 지내야 했어요."
잊고 있었지만 나도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당시는 매달 월말고사를 봤었는데 교사용 해답지가 없어진 사건이 있었다.
"선생님! 저 27년 동안 매일 울었어요. 선생님…"
나는 가슴이 떨리고 당황했다.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할까?
"알았어. 그랬었구나. 선생님이 미안해. 내가 바보야. 너의 결백은 하늘이 다 알고 있을 거야. 그만 울음을 거두고 눈물 닦으렴."
횡설수설 말을 주고받았는데 지금 서울에서 살고 있으며 어머니는 지난 4월에 돌아가셨다 한다.
이제라도 전화를 해준 그 제자가 고맙고 나는 순간 이런 생각이 다가왔다.
"그래 이제부턴 나를 엄마라고 생각하고 나도 너를 큰 딸로 삼아야겠구나. 추석에 고향에 내려오면 꼭 만나자."
눈물없는 인생은 향기가 없다. 8월을 끝으로 온몸으로 지켜오던 교단을 떠나는 선배들에게 영광의 꽃다발을, 내 곁을 스쳐간 수많은 제자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