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옥 동화작가·전 주중초 교장]올해도 노란 국화꽃을 바라보며 어느 누가 이렇게 국화를 예찬 했는지 모르지만 국화가 지닌 덕을 기려 본다.

하나, 밝고 둥근 것이 높이 달려 있으니 하늘의 덕(천덕)이오.

둘, 땅을 닮아 노란색을 띄니 땅의 덕(지덕)이오.

셋, 일찍 심었는데도 늦게 피어나니 군자(군자)의 덕이오.

넷, 서리를 이기고도 꽃을 피우니 지조(지조)의 덕이오.

다섯, 술잔에 꽃잎을 띄워 마시니 풍류(풍류)의 덕이라.

조선 선조 때 영의정 신용개는 중양절(음력 9월9일)에 주안상을 내오게 하여 국화꽃과 마주앉아 취하도록 대작을 하였으며, 생명보다 충절을 귀히 여긴 고려 말 충신 정몽주도 '국화탄'에서  평생 술을 입에 대지 않았는데/너를 위해 한 잔 들고/내 너 국화를 사랑함은/ 붉다 못해 노래진 일편단심인 것을… 하고 노래했다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봄이면 진달래꽃으로 화전(꽃지짐)을 해 먹고, 가을이면 국화잎을 따서 단자를 만들어 국화주를 마셨다니 얼마나 지혜롭고 풍류를 즐겼는지 옷깃을 여미게 한다.                            

국화꽃 향기에 취해 단풍잎마저도 더욱 고운 빛을 띠는 환상의 계절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쁘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마는 가을의 국화꽃은 그 중 으뜸 인 듯하다.

파란 가을 하늘에 오색영롱한 빛깔을 뿜어내는 코스모스가 곱기는 하지만 그래도 소담스럽고 풍성한 둥근 모습과 포근한 노란색이 누구는 누님 같다고도 하고 누구는 엄마 품처럼 따스하다고 해서 사랑을 받으니, 요즈음 국화꽃을 닮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진다.

십 오년 전, 필자의 주위에 국화꽃을 닮은 여인이 있었다. 명예교수이던 그분은 대학원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필자에게 늘 환한 미소로 반겨 주셨다.

그 분을 만나는 날은 아침부터 콧노래가 절로 나왔고 기분은 날아갈 듯 가벼웠다. 환한 얼굴에 넉넉한 마음까지 필자는 국화꽃을 닮은 그 여인을 좋아하게 되었다. 바라만 봐도 그저 좋은 분, 그 분은 정말로 매력적이었다.

마지막 강의를 끝내던 날, 두 손을 탁탁 털며 힘주어 말씀하셨다.

"저는 최선을 다해 여러분께 강의를 했습니다. 더 이상은 못합니다."

열정을 다해 강의했기에 조금도 후회가 없다는 그 분의 열정에 가슴이 뭉클해 눈물이 핑 돌았다. 열정은 다른 사람을 감동케 한다. 필자도 인생을 마감하는 날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 인생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았다. 그렇기에 후회하지 않는다."

그 때 다짐을 했건만 지지부진 다 어디로 사라지고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요즘 또 다른 국화꽃 닮은 여인을 본다. 남을 더 배려하며 늘 넉넉함으로 살아가고 있는 여인. 화가 나도 웃으며 환한 얼굴로 미소 짓는 그의 얼굴에서 오덕을 지닌 국화꽃을 본다. 필자도 국화꽃 닮은 여인으로 살아가고 싶다. 오늘도 국화꽃 향기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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