⑮ 정윤숙 충북도의회의원


언뜻 부드러워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날카롭다. 누구보다도 사람의 마음을 읽는 독특한 리더십이 있다.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고 남을 배려하는 넉넉한 마음도 있다. 항상 노력하며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정윤숙(52·사진) 충북도의회 의원(청주 제5선거구)은 이런 평가 이외에 여러가지 타이틀을 갖고 있다. 충북에서 여성 정치인으로 유일하게 지역구 출신에다 최고의 득표율로 당선된 재선의원 이다.
또 구멍가게 수준으로 여기던 시절 혜안으로 세탁업을 선진단계로 발전시킨 주역이다. 여성경제인들이 드물고 외부에 나서기를 주저할때 과감하게 이들을 끌어내 모임을 만들었다. 이외에 각종 사회,봉사단체에 적극나서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
정 의원은 차분하고 깔끔하다. 그러나 하고자 하는 일에 누구보다도 적극적이다. 의지와 노력이 대단하다. 내적으로 강한 에너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가 이룬 것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신사임당 같이 인자하나 한편으론 현실을 직시하며 추진력은 잔다르크와 같다.
정 의원을 두고는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자신이 한일에 대해 생색 내는 것을 원치 않는다. 정 의원은 누가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모든일에 꼼꼼하며 소리없이 처리한다. 이런 밑바탕이 오늘날 그를 있게 했다.
귀찮기도 하건만 요즘도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다. 의정활동에다 각종 사회활동, 사업 관련 업무, 여성경제인 활동, 주민들과의 만남 등 일정이 빡빡하다.
체력도 대단하다. 정의원은 술자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자기관리를 위해 정보 습득을 위한 공부는 물론 몸 관리에도 결코 소홀하지 않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1~2시간씩 운동을 한다.
정의원은 대학을 졸업한 이후 수년간 인천에서 수학교사를 하다 지난 1990년 청주로 내려왔다. 오로지 세탁업을 하기 위해서이다. 당시 남편이 건설회사에 근무했다. 남편의 작업복 등을 빨면서 세탁업이 미래에 좋은 사업이 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대학에서 통계학을 전공한 덕분에 사업 분석을 철저히 했다.
그때 세탁업은 동네에서나 하는 것으로 인식하던 시절이었다. 청주 시내인 철당길 인근에 가게를 냈다. 상호는 (주)우정크리닝 이었다.
정 의원은 남보다 적극적인 마케팅과 기계의 현대화, 기술개발 등으로 날개를달게 됐다. 충청권은 물론 우리나라 세탁업계의 선두주자로 우뚝 섰다. 세탁업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발전시킨 것이다.
세탁업계 중 유일하게 2000년 벤처기업으로 선정됐다. 세탁업의 벤처기업 선정은 수년간 눈물겨운 노력의 결실이었다. 세탁업의 독보적인 존재를 이룬 쾌거었다. 도내 351개 벤처기업인들과 전략적 연대를 추진하는 계기가 됐다. 이로 인해 경영부문 신지식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 25명의 직원과 충청권 대형마트에 40여개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지금 세탁물을 맡기는 고객의 수는 하루 평균 200여명에 이르고 있다. 한때 경기도 의정부, 광주광역시까지 점포가 있었다. 세탁업을 하는 일정규모 이상의 업주들이 참여하는 크린큐협의회 회장도 맡고 있다.
세탁업을 하던 정 의원은 자연스럽게 여성경제인 모임에 관심을 갖게 됐다. 숫적으로 얼마되지 않던 여성기업인들이 구심체가 필요했던 것이다.
1999년 여성경제인 충북지회 초대 회장을 맡았다. 리더쉽으로 여성경제인들의 권익 옹호와 활성화에 열성을 기울였다. 오늘날 충북 여성경제인 협회의 기반을 닦았다. 초대회장 시절 정의원은 하이닉스반도체 주식갖기 운동을 전국적으로 펼쳐 큰 반향을 거뒀다, 정 의원의 강한 추진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사업, 여성단체의 중추적인 역할과 함께 사회활동도 빛을 발하게 된다. 국제로타리 3740지구 총재 보좌역을 충북 역사상 처음으로 정의원이 맡았다. 당시로서는 사건이었다. 이기간 동안 크고 작은 봉사활동을 전개했다.
지난 2005년부터 현재까지 적극 관계하고 있는 아름다운 가게는 봉사활동의 결정체이다. 현대 충북도청 인근의 문화점 운영위원장을 맡으며 기여하고 있다.

이밖에 각종 단체와 활동은 수없이 많다. 저소득여성가장지원심사위원회 위원, 도민대상 심사위원, 청주 경실련 자문위원,노사정협의회 위원, 충북 장애인체육회 이사 등 모두 40여 가지에 이른다. 사용자로 충북노동분쟁 조정에 관여하는 것은 큰 보람이다.
정의원이 무엇보다도 두각을 보인 것은 정치이다. 우연하게 정치에 입문했다. 지난 2002년 자민련 소속 비례대표로 제 7대 충북도의회에 처음 진출했다. 여성의원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게 된다.

이 기간 충북도노사정협의회설치 및 운영조례일부개정을 발의하기도 했다. 그 이후 한나라당 소속의 지역구의원으로 진출했다. 여성으로 두꺼운 벽이 있는 것이 현실인 가운데 공천을 받아 청주 지역구에서 압도적 지지로 당선 됐다.
제8대 전반기 산업경제위원장을 맡았다. 이 기간중 위원장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이다. 후반기에는 교육사회위원회로 옯겨 활동하고 있다. 그의 무한질주가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하다.
정 의원이 이렇게 외부에서 정진하는데는 남편 이정구씨(55)이 역할이 크다. 어찌보면 남편이 있기에 오늘이 있단다.
남편은 정의원이 가정에 부담을 갖지 않고 밖에서 편하게 활동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남편은 내적으로 사업이나 지역구 관리를 돕고 있다. 보이지 않지만 정의원의 가장 큰 후원자이다. 사업이나 정치관계로 저녁 약속을 하게되면 남편은 대리운전기사가 된다. 30분전 밖에서 기다리다 정의원을 태우고 간다. 남편은 이해심 많고 폭이 넓다고 한다.
결혼이후 신뢰관계가 이런 것을 만들었다. 그렇다고 정 의원이 가정을 돌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귀가하면 발벗고 허드렛 일에매달린다. 충남대를 졸업한 정의원 부부는 캠퍼스 커플(남편은 토목과)이다.
정의원은 대전이 고향이다. 2녀를 두고 있는데 큰 딸은 결혼해 서울서 살고 있다. 부부는 가끔 시간이 나면 운동을 함께 한다.
/이재기기자

<학력>
■천동초등학교 졸업<1969년>
■한밭여자중학교 졸업<1972년>
■대전여자고등학교 졸업<1975년>
■충남대학교 수학과 졸업<1979년>
<경력>
■1990년~현재 ㈜우정크리닝 대표
■1999년~2004년 한국여성경제인 충북지회장
■1998년~현재 충북도바르게살기협의회 이사
■2002년~2004년 청주경실련 자문위원
■2002년 충북도사회복지공동모금회 운영위원 회장
■2005년~현재 노사정협의회 위원
■2007년 한나라 대통령후보 충북여성 특보
■2008년~현재 충북도종합자원봉사센터 운영위원
■2008년 충북도경제교육협의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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