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혜영 서원대 교수.

[황혜영 서원대 교수] "당신은 어제 울고 있었어요."

이제까지 본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랑의 장면을 꼽으라면?

영화마다 그 영화만의 방식으로 사랑의 의미를 그려 보여주기 때문에 어느 한 장면을 고르기가 망설여지지만 그래도 특별히 인상 깊었던 장면을 꼽자면 두 장면이 있다.

하나는 타르코프스키의 '안드레이 루블료프(1966)'에서 수도승 화가 안드레이가 백치 소녀를 만나고 떠나보내는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키에슬로프스키의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1988)'의 마지막 장면이다.

이 두 번째 영화는 최근 학교 도서관 영화 상연에서 다시 보게 되었는데 처음 파리에서 보았을 때의 은은한 감동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이 영화는 원래 텔레비전 방송용으로 만들어졌는데 이후 극장 상연을 위해 원래 영화에 마지막 장면을 추가하였다고 한다.

영화의 여운이 지금까지 마음에 남아 있는 건 마지막 장면 때문인데 이 장면이 없었다면 아마 한 번 보고 스쳐지나버리는 영화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19살 우체국 직원 토멕은 여행 중인 친구 방에서 지내며 친구가 알려준 건너편 아파트에 사는 여자 마그다를 늘 망원경으로 훔쳐본다.

가짜 송금표로 그녀를 우체국에 오게 만들거나 그녀의 아파트에 우유배달을 하기도 하고 그녀가 애인과 사랑을 나누는 순간 가스 누출신고를 해 방해하기도 하던 그는 어느 날 애인과 헤어진 마그다가 힘없이 돌아와 테이블 위에 쏟아진 우유를 팽개쳐둔 채 흐느끼는 뒷모습을 들여다보며 그녀의 아픔을 진심으로 나누고 싶어 한다.

다음날 가짜 송금표를 가지고 우체국에 왔다가 국장에게 오해를 받고 돌아가는 그녀를 뒤따라가 자기가 송금표를 우편함에 넣었다고 자백한다.

화를 내며 밀치는 그녀에게 그는 머뭇거리다 한 마디 "당신은 어제 울고 있었어요"라고 외친다.

그는 1년 동안 그녀를 훔쳐본 사실을 실토하고 자신의 사랑을 고백한다.

아무 것도 원하는 것이 없이 사랑한다는 토멕과 달리 사랑을 믿지 않는 마그다는 데이트를 하고 오는 길에 그를 자신의 아파트로 이끌어 육체적 욕망을 자극하며 흥분한 그에게 그것이 사랑의 전부라고 냉소적으로 말한다.

마그다는 그에게 상처를 준 것을 뉘우치며 그를 찾아다니다 마침내 자살을 시도 후 병원에서 퇴원해 안정을 취하고 있는 토멕의 아파트에 찾아가 잠든 그의 침대 곁 망원경으로 자신의 방을 들여다본다.

망원경으로 자신의 아파트를 들여다보는 마그다의 눈에 보이는 것은 홀로 남겨진 채 힘없이 돌아와 우유가 엎질러진 테이블에 앉아 흐느끼는 자신의 뒷모습이다.

이어 소리 없이 다가와 흐느껴 우는 자신의 어깨 위에 말없이 손을 얹어주는 토멕의 모습이 눈을 감은 그녀의 시선에 잔잔히 떠오른다.

마그다의 눈에 떠오르는 현실 그 너머의 환상은 "당신은 어제 울고 있었어요"라는 말로 그녀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토멕의 잠잠한 사랑의 형상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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