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광섭칼럼

그날 밤, 나는 난생 처음 어머니 손을 잡고 나비넥타이 차림으로 꽃구경 하는 꿈을 꿨다. "어머니, 꽃구경 가는데 왜 나비넥타이를 해야 하지요?" "아들아, 아무리 예쁜 꽃이라 해도 고운 마음으로 보지 않으면 그 꽃은 꽃이 아니란다. 내 마음부터 정갈해야만 세상이 모두 아름답고 소중하게 보이는 거란다. 세상에 대한, 꽃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거라" 나는 어머니 손을 꼭 잡고 하얗게 흐드러진 찔레꽃 사이를 마치 바람결에 흔들리듯 뛰어다녔다. 그곳에는 꽃도 사람도 바람도 모두가 하나의 숨결로 여울지고 있었다. 그것들은 희미하거나 혹은 강렬한 빛으로, 어두운 그림자로, 그윽한 향기로 서로를 보듬고 속삭이고 있었다.
지난밤의 꿈을 간직한 채 서울행 기차를 탔다. 옛 서울역에서 개최되는 '패션, 문화를 만나다' 행사에 초대받은 김에 기차여행을 즐겨보자는 심상도 있었지만 꿈에 대한 불안과 긴장 때문에 가급적이면 운전을 피하고 싶었다.
얼어붙은 겨울의 들녘을 달리는 기차에 내 몸을 맡겨보는데 마음만 심란하다. 꿈 때문이기도 했지만 몇 시간 후면 만나게 될 서울역의 패션쇼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사실, 이번 패션쇼는 디자이너 이상봉 씨가 직접 전화로 초대해서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다. 불혹을 넘어 세상 구경 참 많이 했다고 자신했지만 패션쇼를 위한 나들이는 처음이었다. 내겐 첫 경험이었던 것이다. 누구나 첫 경험에 대한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과 기록들을 갖고 있겠지만 이번의 경우는 역사의 상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폐건물에서 공연과 패션이 함께 만나는 것이니 만큼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미 기차역을 개조해서 세계적인 미술관이 된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은 아트팩토리 사례로 각광받고 있다. 버려진 폐공간을 철거하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문화 아이콘과 접속시킨 곳이 어디 이곳뿐인가. 영국은 창조도시라는 이름으로, 이탈리아는 역사보존과 가치창출이라는 노력으로, 일본은 마을공동체 가꾸기 일환으로 그 지역을 차별화하고 브랜드화 하고 있다.
물론 성공한 곳에는 항상 다양한 삶의 양식과 문화의 조화, 과거와 현재의 랑데부, 사람과 자연의 어울림이 있다. 그리고 시민들의 문화아지트로, 살아있는 현장교육의 장으로, 가슴 설레는 추억과 낭만의 공간으로, 역동적이고 생산성 높은 관광명소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옛 서울역사도 새로운 소통의 준비를 하고 있다. '패션, 문화를 만나다'는 그 출발점이라 할 것이다. 패션이 패션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노래와 춤, 시와 연극, 음식과 디자인이 만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백년의 세월을 숨가쁘게 달려온 현장에서 펼쳐지는 문화이벤트라는 사실만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이상봉 패션쇼는 그 자체만으로도 다양한 삶의 양식과 소통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백만 개의 빛이 100년의 세월 묵묵히 버텨 온 그곳을 뜨겁거나 화려하게, 우아하거나 강렬하게 접속한다. 순간순간마다 물방울 같은 맑고 청량한 소리가 울렸다. 빛에도 소리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시간의 빛, 공간의 빛, 그리고 인공의 빛이 함께 만났을 때 만들어지는 소리였다. 이상봉의 문화코드 역시 '빛'이었다. 그 빛은 세월의 빛이자 생명의 빛이며, 공간의 빛이자 삶의 빛이었다. 한국의 문화적 감수성을 담은 조각보, 전통미학에서 만날 수 있는 단청, 과학과 철학이 만나 새로운 문명을 잉태시킨 한글 등을 응용한 다양한 기법의 의상이 선보였다.
컬러의 다양성과 조선 여인의 숨결을 닮은 순백의 미도 엿볼 수 있었다. 예쁜 옷을 걸쳐 입은 모델들이 달빛 위를 걸었다. 빛과 어둠, 삶과 죽음의 아슬아슬함이 엿보이는 무대 역시 문화라는 이름의 또 다른 매트릭스였다.
폐허가 된 공간, 인간의 발걸음이 뜸한 뒷골목일지라도 문화와 접속하는 순간 엄청난 에너지가 샘솟고 희망을 발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