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 전 단재교육연수원장] 올해 끝자락이다. 혁신에 대한 회오리가 2015년 초 특집으로 메워지고 도전의 격랑은 끝없었지만 막상 섣달의 성적표는 기대를 밑돈다.

민생문제 조차 정치권이나 선출직 공직자 모두 입에 발린 말잔치였다.

충북지역 국회의원 중, 철도비리에 연루 돼 금배지를 잃었는가 하면 국회회관 의원실을 자작 시집 매점처럼 갑질하다 전국 메인뉴스를 탔다.

진천군은 몇 개월 째 군수 없는 군으로 혼쭐나는가 하면, 179일 만에 업무 복귀한 괴산군수 역시 예상 법정출입 계산 불가로 공황 상태다.

한 표(票)를 구걸하기 위해 유세장을 달구던 약속은 원칙(原則)과 변칙(變則)이 뒤죽박죽되면서 유권자 분노가 높다.

선출직 공직자의 어물쩍 윤리에 대한 넌덜머리, 이제 인내조차 바닥났다.

(도덕적 해이)

상처 많은 사람일수록 방어에 능하다. 대부분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다. '길을 두고 왜 모로 가느냐?'는 질타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 틀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 모두 일그러진 공직구조의 DNA다. '표적, 결백, 억울'같은 낱말을 쏟아내지만 경고에는 잇따라 불이 켜지고 있다.

국민보다 사욕을 앞세운 내공(內空)없는 세포의 끔찍한 일탈이다. 흐려진 윗물 아래서 청수(淸水)를 기대하는 상투적 대응은 허구에 불과하다.

'헌신적, 청백리, 동력'모두 식언(食言)이 된 채 두들겨 맞고 나서야 비로소 아픔을 느끼는 바보니 걱정스럽다.

공직은 국민을 섬기는 직업이다. 고수는 자기관리에서 승부한다. 유권자로 부터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처럼 슬픈 건 없다.

아니 그보다 무슨 배짱으로 표(票)를 배신하는 지 안쓰럽다.

(한 표(票)의 힘)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거나 까탈스런 민원일 경우 곤혹스럽다. 그러나 탓하기 전, 자신의 현재 상황과 접근 방식엔 문제가 없는지를 먼저 짚어봐야 한다.

'원칙에 따라 어떤 일을 하거나 자신을 통제 또는 절제해 해낼 수 있는 힘' 이 곧 공직자의 역량이듯, 출발은 '셀프혁신'으로 무장해야 한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공직자의 윤리는 '뇌물을 받지않고 배임 횡령하지 않는 것'으로 족했다.

지금은 이것을 뛰어넘어 투명, 공정, 친절, 책임, 능동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바로 균형 감각이 필요한 이유다. 최소한의 염치는 당연하다.

스스로 꼿꼿하면 궤변은 발붙일 곳을 잃게 된다. 감사를 겁내고 계약과 인사 관련 잡음이 요란한 속에서 따스함이 번질 리 만무하다.

왜 스스로가 무덤을 파고 일찌감치 그 속에 묻히려 드는가? 정답은 '나부터, 지금부터, 쉬운 일 부터'다.

세상은 넓으나 운신 폭은 참으로 좁다. 어떤 선출직 공직자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데도 경쟁적으로 모시려하고 또 어떤 경우는 허리 굽혀 사정해 보지만 눈길 한 번 안준다.

해법은 자신의 권위에 달렸다. 존경과 감동은 내공을 통해 발할 수 있지만 그릇된 윤리와 횡포는 버림받기 십상이다.

기댈 곳조차 잃은 국민감정, 어떤 방법으로 추슬러야 할까? 정말 살아있는 힘은 공천이 아니라 표(票)란 걸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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