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산이 저 만큼 다리를 놓아 /아침 새도 얼른 못 쪼으는 아침 /뿌연 안개 뚫고서 색칠한 길엔 /속닥속닥 아이들 세상을 닦는 소리 /바람 한 줌 움켜다 이마에 대고 / '씨 - 익'웃으면 하루가 뜬다./ 잠도 잊은 동심의 방학을 그린 필자의 시 '방학 아침' 전문이다. 방학은 누구에게나 특별하다. 서툰 솜씨지만 아빠와 함께 만든 음식으로 엄마한테 점수를 따고 있다. 서툴렀던 피붙이와 섞여 촌수 따지기에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자녀를 보며 가족의 근육이 붙기도 한다. 또래끼리 어울려 동네 골목마다 시끌벅적해야 폼나는 방학이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마구 뛰고 부딪치는 시간 속에서 너른 품이 생긴다. 부모의 전부가 자식이 듯 방학은 아이들 삶의 전부나 마찬가지다.
대견스러운 옹알이
세상엔 바른 교육을 위한 덕목과 몸집 불리기로 넘쳐난다. 아이를 다 키워내고 보니 무릎치며 후회할 일도 많다. 필자가 초등학교 저학년 방학 때면 어머니께서 챙겨주신 농주(農酒)를 들고 아버지 일터를 자주 향했다. 진담 아닌 농담처럼 "너도 조금 마셔 봐…" 건네주신 생애 첫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부자(父子)간 그림도 끈적끈적한 추억이다. 부모도 사람인 만큼 완벽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초등학교 아이를 여러 개 학원에 밀어 넣는 걸 보면 끔찍하다. 섣부른 욕심은 폭력과 다름없다. 독일 학생들의 방학 생활 결정권은 자녀에게 있다. 학기 중과 달리 대부분 여행을 통해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고 취미활동과 독서, 스포츠를 즐긴다. 학부모의 유일한 철칙 중 하나가 '공부를 절대 강요하지 않는'최고 교육이다. 방학 색깔, 어디까지나 자녀 스스로 칠해야 한다. 설령, 울화가 치밀어도 부모의 분노보다 훨씬 대견스러운 옹알이로 깨닫는 것이 먼저다.
"안 돼" 타령
방학을 마주할 때마다 부모와 자녀의 해석은 언제나 전혀 다르다. 한 달 남짓 방학을 눈이 벌겋게 이리 뛰고 저리 뛴 부모의 보폭만큼 성장은 비례하지 않는다. 그러나 방법은 각양각색이지만 대부분 엄마 맘대로다. 혼자서 꾸려갈 수 있도록 지켜주는 여유, 그런 방학에 아이들은 조금씩 숙성돼 간다. 배움엔 시기와 순서가 있는 법, 무조건 먼저 나선다고 능사는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끊지 못하는 악순환의 혼란이다. 자녀를 기계처럼 돌리려는 발상으론 창의나 자기주도적 역량은 여위고 사회성 마저 나약해 진다. 겉으론 나아지는 것 같지만 시나브로 미래를 어둠으로 밀어내기 아닌가. 자존감이 낮고 어려움에 닥쳤을 때 쉽게 포기해 버리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방학 내내 멀쩡한 아이를 "안 돼" 타령으로 감시하는 부모야 말로 주어진 회초리를 스스로 내려놓은 실수다. 짧은 시간 친구들과 어울리려 해도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며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인간관계의 끈을 부모가 잘라놓고 있다. 강조하건 데, 방학은 자녀들의 꿈과 그들이 감당해야할 미래에 대한 업그레이드 기간이다. 방학이 끝나면 아이들마다 생기와 윤이 자르르 흘러야 방학 농사 잘한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