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 전 단재교육연수원장

▲ 오병익 전 단재교육연수원장.

[오병익 전 단재교육연수원장]"너도 어른되어 아빠하면 알지…?/말이 그렇지 /팔남매 손 벌려 다가설 때마다 /차츰 휘어지신 등허리 /어미 소 큰 눈망울 /새끼 날 달 채워가면 /아버지 말씀도 덩달아 부자 /두고두고 가슴에서 커가는 /아버지 말씀을 듣고 싶다 /
 
필자의 시 '아버지의 초상'전문이다.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됨에 따라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의 빈곤과 학대는 2014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부양 의무를 저버린 자식을 향해 "물려준 재산 내 놔, 받은 건데 그렇게 못합니다."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시나리오가 현실로 시끄러우니 지난 날, 부모님 세월이 유독 농도 짙게 밀려온다. 

필자가 대학 입시준비로 속력을 내던 고등학교 3학년 11월 말, 팔남매의 위대한 경영자인 아버지께서 저승의 부름을 받으셨다.

그 후 어머니는 일흔을 넘기자마자 아버지 곁으로 떠나셨다.

생전, 고해할 곳이 없다며 통화가 길었던 일도 어머니의 영면 준비란 걸 눈치 못 챈 바보였다.

생전,  여덟 자식의 버거운 치다꺼리에 어느 하루도 걱정 멎을 날이 있었으랴.

혼자되신 어머니는 외로움도 사치라며 부산한 미완(未完)의 맷집을 키우셨다.

낯설지 않은 일상인 줄 알았건만 잃어버린 은혜가 돼 평생 빚으로 안고 산다.

존속 상해와 재산 다툼으로 원고와 피고가 돼 법정을 드나드는 부모 자식 등, 유형도 다양하다.

폭력은 그 중 하나일 뿐이다.

도덕적 딜레마에 혼란한 천륜의 파기다.

개중엔 부모 자식의 관계가 사근사근한 집안도 눈에 띄지만, 삼강오륜의 차치하고 원수 같은 부자(父子) 또는 형제자매·고부(姑婦)지간이 낯설지 않을 정도로 불어나니 문제다.

대부분 우리들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졸(卒)로 보는 자식 포기증후군, 서글픈 일이지만 '효도계약서'파기도 현실이 됐다.

소통부재에 과욕 등, 이유와 상황은 다르겠으나 세파가 아무리 많은 걸 조각낸다 해도 영원불변인 진리,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것',부모 자식 간 혈액 먼저 깨끗해질 때 공경이나 효(孝)의 불씨도 살아나리라.

부모 형제와 둘러앉아 희미해진 기억을 더듬는 맛 때문에 고향가는 길은 아무리 혼잡해도 멀미를 덜한다.

한편으론 자신의 처지 때문에 귀향을 꺼리는 사람도 있다. 우리 형제는 팔십 넘도록 맏며느리 노릇을 떼내지 못하는 큰 형수를 '바보'라 부른다.

맏이 역할에 빠져 열한 번 제사와 형제 챙기기로 읍내에서 뜨르르할 정도니 그냥 바보가 아니라 '꼭 시어머니 빼닮은 바보'를 고집한다.

아니 그보다, 동생들을 맞으려 고향집 앞부터 꽤나 긴 시골 길을 싸리비로 쓸고 기다리는 맏형은 아버지 생전과 똑같다. 앞 뒤 날짜를 꼲아 보니 이번 명절은 꽤 길다.

"아버님 어머님, 꼭 가려고 했는데 애들이 아파서…" 라든지 제삿상에 절이나 꾸벅하고 부랴부랴 떠나려는 핑계야 말로 명절을 연휴로만 착각한 대표적 불효요 학대다. 최근 이런저런 이유로 부모를 방치하거나 버리는 자식까지 늘고 있는 추세다.

자식의 도리를 팽개치는 것, 오죽하면 패륜이라 했을까. 설 명절의 체온 역시 마음먹기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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