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내지 않는 비로 /목욕하는 나무 /겨우내 묵은 때 씻어 /젖살 오를 꿈으로 /운동장 아이들 /언 땅 뛰는 소리에 /움쭉움쭉 잎눈도 /덩달아 튼다. /필자의 시 '이른 봄 나무' 전문이다.

3월 새내기 햇살은 머잖아 산수유 꽃 소식 채비다. 문구점에서 학용품을 고르는 학부모들 모습도 친근한 풍경이다. 도의회가 강제로 편성한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6개월분 412억원을 교육감이 집행하겠다고 선언, 장기전은 막을 내렸다.

예산 집행 거부야 말로 수긍 못 할 도의회의 무시라며 감정의 골이 깊다 싶더니 마침내 충북도교육청 조직 개편까지 부결 처리하는 등 삼척동자도 예견한 누리과정 분란은 일파만파였다.

일방통행적 빗질에 익숙하다보면 자칫 상대적 오해가 짙을 수 있다. 갈등을 따지기 전, 세 기관(충청북도도교육청, 충청북도, 충청북도의회) 모두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잊은 실수다. 필자는 본보 칼럼(2015년 12월3일자, 누리과정 예산 최우선 순위다)에서 "아이들 갖고 장난질은 이제 끝내야 옳다. 지자체마다 예산을 놓고 내홍이 심하다. '더 늘려달라, 왜 깎았나? 끼리끼리 해먹는 것 아니냐? 우리 기관 좀 살려 달라' 씀씀이가 느니 죽는 소리도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우선으로 누리과정 예산부터 매듭짓는 게 순서다"를 주장한 바 있다.

결국 교육부·복지부 장관, 총리 닦달에도 꿈쩍 않는 교육감을 조준해 "누리과정 예산 편성은 법적 의무 사항"이라며 대통령까지 포문을 열지 않았던가.

원래, 영·유아보육법의 적용을 받는 보육기관인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와 시·도지사 책임이다. 또 유아의 보육은 아직 완전한 공교육 범주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민간주도형 시설인 어린이집이나 놀이방 의존도가 높다.

저출산 원인도 결국 보육 문제다. 만 3∼5세 보육 및 유아교육 국가완전책임제(누리과정) 실현에 엄청난 예산을 퍼부었으나 오히려 정신적 공황만 늘었을 뿐 결혼과 출산율은 진전이 없다. 정말, '무상 보육'만 믿고 아이를 낳았다간 낭패란 걸 혹독하게 경험하고 있다.

어린이집 관할권조차 없는 교육감에게 누리과정 예산의 책임 전가는 모순이다. 보육과 교육 모두를 교육감 관할로 통합하면 문제는 해결된다. 우선 집행 못지 않게 장기 대책이 필요하다.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두고 너무 지리멸렬할 정도로 비겁했다. 다툼은 결국 '네 탓' 공방으로, 문제는 셈법 없는 대선공약 남발이다.

마구 쏟아낸 선심성 정책의 처참한 답안 아닌가. 교육계의 기우(杞憂) 정도였음 마음 편할 일이다.

어떤 정책이든 국민의 바람을 눈높이에 맞추는 것은 만사의 기본 아닌가. 몇 개월짜리 땜질식 예산을 풀어 당장 급한 불을 끄려는 발상이 더 큰 문제다.

현장성 없는 대책을 정답이랍시고 떠들지만 정치권의 결단 외엔 글쎄다. 보육걱정 말고 출산률 높이라더니 아이들을 볼모로 갈수록 배짱이다. 이번 기회에 어린이집 관할권과 감독권부터 교육감에게 넘겨라. 그것만이 희망가다. 어정쩡한 사태의 악순환까지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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