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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여성교육의 첫 발 내딛다⑤ 대전 호수돈여자고등학교
이정복  |  news@ccdail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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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01.15  1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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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성에서 싹튼 근대 여성교육
한국에 감리교가 전래된 것은 미국 감리교회로부터이다.미국 감리교의 해외선교에 대한 관심은 19세기 초부터 시작됐고, 한미수호조약(1882년)을 계기로 한국에 진출하게 됐다.

이처럼 한국에 감리교의 선교활동이 이뤄진데는 서구 자본주의의 팽창주위와 기독교의 확장주의 적 선교정책, 미국감리교의 적극적인 의지가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한국에서는 서구문명의 수용을 통해 서구의 도전과 침략을 극복하고자 했던 개화파 진영과 이에 공감하고 있던 왕실의 기독교에 대한 호의적인 인식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감리교의 한국진출에 있어 개화파의 김옥균은 북감리교회의 진출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남감리교회의 한국 진출과정에서는 윤치호의 역할이 지대했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에서 호수돈은 남감리교회의 선교활동이 토대가 돼 탄생됐다.

1897년남감리교회 콜리어(collyer)목사의 도착으로 남감리교회의 선교진용이 강화됐고, 같은 해 11월에 콜리어는 개성 개척선교사로 임명돼가족과 함께 개성으로 이주를 했다.

콜리어 부인이 부임하면서 중단됐던 선교활동이 캐롤이 부임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평소 한국어에 능통했던 캐롤은 특히 한국의 여성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기독교교육이 그 해결책임을 확신하게 됐다.

캐롤은 개성에서 쌍소나무집을 사서 방과 마루를 들인 후에 1899년 12월19일 옛 서울 충현이 어린 송악의 하늘아래서 열두명의 고려의 딸들을 데리고 역사적인 신식교육의 수업을 시작했고, 이는 보수적인개성에서의 여성을 위한 여성교육의 첫 울음이자 신교육의 효시(嚆矢)가 됐다. 즉, 호수돈의 역사가 태동한 것이다.

호수돈은 1899년 주일학교 형태로 수업을 시작해 1904년 정식학교로 인가를 받을 당시 '개성여학당'이라 불렸고, 학당의 당칙이 제정되던 1906년부터는 탈루야(tallulah) 일명 둘레학교라고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교사는 스탈리 박사의 어머니 기념관으로 1909년 5월15일 건립됐고, 이 건물을 가리켜 홀스톤(holston)기념관이라 불렀고, '호수돈'이라는 교명도 건축기금을 보내 준 지방의 이름을 따서 정한 것으로 알려져 오고 있다.
◀ 3·1 독립운동·광주 학생운동 대거 동참
일제의 교육정책은 한국에 대해 정치적 자주독립성을 무시하고 추진됐고, 유화적 정책으로 민족의 자존심을 무시한 채 강력한 통제정책을 교육에 적용시키려 했다.
이에 항거해 일어난 것이 바로 3.1운동이다. 호수돈여고 학생들의 독립운동에 대한 의지도 뜨거웠다. 1919년 3월 3일 호수돈여학교와 한영서원 학생들이 중심이 돼 만세운동을 벌였다.
이날 참석한 많은 여학생들이 경찰서 뒤뜰 운동장으로 연행됐으나 불타오르는 애국심을 일제는 꺾을 수 없었다. 당시 호수돈 기숙생들이 조직한 비밀결사대도 독립운동의 큰 역할을 했다.
이 비밀결사대는 1919년 3월 2일 거사할 독립선언을 위해 권애라, 장정심, 조숙경 세사람의 핵심멤버가 조직됐다. 이들은 목숨을 걸고 맹세한 결사대로 80명의 기숙생을 포섭하는 임무를 맡아 성공리에 수행했다.

◀ 한밭서 싹튼 호수돈
6·25동란으로 인해 남하(南下)한 가정의 자녀들이 각 지방으로 흩어져 다른 학교의 위탁생으로 있으면서 호수돈 모교가 빨리 개설되기를 원한 마음이 학생들에게는 간절했다.

피난 보따리를 짊어지고 서울로 부산으로 조치원으로 떠돌면서 호수돈이라는 이름을 내려놓을 곳을 찾아 많은 고통의 시간을 보고 있었던 분이 제2 호수돈 대지(垈地)를 찾은 강기순 교장이었다.

그 당시 호수돈의 부지를 물색중에 있다는 강 교장의 소문을 듣고 대전 제일감리교회의 이형재 목사는 호수돈이 대전으로 내려오면 지금 대전제일감리교회에서 경영중인 여자고등공민학교를 교사(校舍)와 함께 인계할 것을 제안했다.

대전에서의 초기의 호수돈 교사는 대전 제일감리교회 옆의 기와집 교사였다.
고등공민학교를 폐교함과 동시에 여학생들은 '호수돈'이라는 오랜 역사의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이름 아래 1953년 4월 20일 재단법인을 명덕학원으로 하는호수돈이 개교의 첫 시작을 울리게 됐다.

이후 호수돈은 54년 문교부장관인가를 얻어 현재의' 호수돈여자고등학교'로 개칭하고, 호수돈은 지난 99년 5월 15일 개교 100주년 행사를 성대히 거행했고, 지난해 까지 모두 2만1714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 자랑스런 호수돈 동문
역사가 말해주듯 호수돈을 빛낸 동문들의 활약은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10회 졸업생인 문태임씨는 약 70년이라는 세월을 호수돈과 함께 역사를 같이 있다. 22회 김경애 동문은 동창회에서 운영하는 송전장학회에서 활동을 하면서 모교를 지원했고, 1989년 부터 1991년까지 호수돈 장학회장을 역임하면서 각종 장학사업에 노력했다.
이밖에도 주옥같은 시를 남긴 모윤숙 시인과 국내에서 시인이자 소설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유안진씨도 호수돈 동문이다.또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장군인 양승숙씨도 호수돈 43회 동문이고, 지난해 제29회 베이징 올림픽 탁구 여자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김경아씨도 이 학교 출신이다.



"미래인재 양성의 산실"

<인터뷰>신현충 교장

-학교의 자랑은.
호수돈여고가 올해로 110주년을 맞는다. 100년의 연륜을 쌓은 만큼 국가적으로 교육사업에 기여한 바 큽니다. 특히 호수돈은 과거 불모지에 가까웠던 우리나라의 여성교육발전을 앞장선 역사와 전통을 소중히 간직한 여성교육의 산실이라고 자부합니다.
또 새시대에 걸맞는 참다운 민주여성시민 양성의 좌표를 설정하는데 등대 역할을 할 것으로 봅니다.
-학교장의 경영방침은.
'남을 위해 살자'라는 교훈과 기독교정신을 바탕으로 인성, 교육,덕성,지식, 건강한 체력을 갖춘 미래 지향적인 세계인을 기르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즉, 소망을 이루는 학교,학부모와 교사가 함께하는 열린 행정 운영, 자기업무처리를 솔선수범으로 이행하며 존경과 신뢰를 받는 교사, 인성이 바르고 창의력이 있는 학생을 배출하는 것입니다.
- 지난해 학교 운영 실적은.
학생들의창의력과 인성교육에 힘쓴 결과 지난해 대전시교육청으로부터 독서논술교육 부문과 학력신장 우수학교로 선정됐습니다.
특히 학생들의 수준별 이동수업을 통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크게 향상됐고, 이에 따라 대학진학률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뒀습니다.
/대전=이정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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