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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처음처럼
변광섭  |  news@ccdail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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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01.20  15:3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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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광섭칼럼

우리 집 거실에 액자 하나가 걸려있다. 15년째 한 자리에서 변가네 가정사를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그 액자는 결혼식 날 주례를 맡았던 문학평론가 김영수 선생님께서 친필로 水滴石穿(수적석천)이라는 사자성어를 써서 주신 것을 예쁘게 표구한 것이다.
당시 그분께서는 주례사를 통해 미미(微微)한 힘이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큰일을 이룰 수 있으니 부부가 함께 끈기와 인내를 갖고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와함께 예식장 무대를 비추고 있는 두 개의 촛불을 가리키면서 "촛불처럼 자신을 태우고 희생하면서 세상을 밝히는 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 순간의 기억이 아직까지도 내 가슴속에 살아있다.
액자와 함께 무심한 세월을 보내며 세 명의 딸을 낳았다. 이따금씩 학교에서 가훈을 써 오라고 하면 아이들은 으레 하나밖에 없는 액자 속의 한자를 베껴가곤 했다. 그 때마다 "우리 집 가훈이 너무 어려워 친구들에게 제대로 설명을 못하겠으니 바꿔 달라"며 푸념이었다. 이 때문에 나는 글자 앞에 서성거리면서 水滴石穿의 사자성어가 주는 메타포가 무엇인지 고민에 빠져야 했고, 아이들 말대로 좀 더 폼 나는 것으로 바꿔볼까도 생각했다.
우리가족 구성원이 동의하지 않는, 게다가 이해하지도 못하는 어려운 글귀를 놓고 가훈이라고 부르는 것도 별로 마음 내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하기 위해 현관문을 막 빠져 나가려는데 큰 딸이 뒤쫓아 오더니 내 손을 꼭 잡는다. 그러고는 잠시 멈칫멈칫 거리더니 성적표를 건네며 사인을 해 달란다.
그 성적표에는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형편없는(?) 점수가 적혀 있었고, 나는 속상한 나머지 그곳에다 사인을 하는 것 자체가 거추장스럽고 실망스러울 뿐이라며 사인을 거부했다.
딸아이는 당황했던지 오늘까지 사인을 해 가지 않으면 선생님께 혼난다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러면서 "우리 집 가훈처럼 조금씩, 조금씩 공부해 나가면 아빠를 기쁘게 해 줄 날이 있을 것"이라며 사인을 해달라고 재차 주문했다. 아, 그렇구나. 아이들은 어느새 그토록 어렵다던 사자성어를, 우리 가족의 노리갯감에 불과했던 가훈을 꺼지지 않는 등불처럼 자신들의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었구나. 그 순간, 30여 년 전의 시골 풍경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초등학교 시절의 어느 봄날이었다. 아버지는 뒷밭에 거름을 주고 고랑을 낸 뒤 고추모를 심으셨다. 그리고는 읍내 장터를 다녀올 동안 뒷밭에 고춧대를 박아달라고 하셨다. 아버지가 미리 준비해 논 고춧대는 어림잡아 천개가 넘는 것 같았다. 고추밭 면적만 해도 수백 평에 달했기 때문에 온 종일 그 짓을 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었다.
시린 겨울이 지나고 세상은 온통 만화방창(萬化方暢)인데, 어린 나는 친구들과 동산위에 올라가 뛰어놀 생각에 잔머리를 굴릴 수 밖에 없었다. 고춧대 박기를 서너 고랑쯤 했을까.
남은 고춧대를 모두 뒷산 계곡에 갖다 버렸다. 그러고는 동네 벗들과 신명나게 놀았다. 산과 냇가를 오가며, 꽃과 바람과 따사로운 봄 햇살을 온 몸으로 느끼며 불꽃같이 뛰어다녔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장에서 돌아온 아버지께 변명의 여지도 없이 손바닥과 종아리에 피멍이 들도록 맞았다.
게다가 "너는 기본이 안된 놈이기 때문에 공부해도 큰 사람이 될 수 없다. 내일부터 학교에 가지 말라"는 불호령까지 내리셨다. 철없이 놀 궁리만 했던 나는 밤새도록 무릎꿇고 백배사죄를 해야 했으며, 그날 이후 아버지는 내 방 천장에 '정신봉'이라고 쓴 큰 몽둥이를 걸어 놓으셨다.
그날부터 시골집 가훈은 '정신봉'이었다. 인생의 봉(鳳)을 잡을 때까지 정신 바짝 차려서 공부하라는 뜻이다.
水滴石穿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현실에 안주하거자 좌절하지 말고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도량을 갈고 닦는 삶의 노정을 걸을 때 비로소 에너지가 생기는 것이다. 물방울 같은 작은 에너지가 모여 바위를 뚫는 크고 강렬한 불꽃같은 열정이 만들어진다.
그 에너지는 개인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원천이며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가꾸는 소통의 창구라 할 수 있다.
새해도 여러 날이 지났다. 늘 처음처럼 맑고 곱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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