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영 서원대 교수

[황혜영 서원대 교수] 얼마 전 발목이 삐어 깁스를 하게 되었다. 깁스를 하기는 난생 처음인데 요즘은 기술이 발달되어 은박지 포장된 물렁한 것을 발바닥부터 발뒤꿈치 위까지 오도록 자르더니 비닐을 벗기고 발에 대고 붕대를 감으니까 그게 서서히 굳어 딱딱한 반 깁스가 되었다. 잘 몰랐는데 발목이 삐어 인대가 늘어난 것이 생각보다 회복도 느리고 재발되기 쉬워 조심해야 된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자 발이 퉁퉁 붓고 발전체에 검은 피멍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깁스 가장자리가 닿는 부위에는 더 진한 피멍이 선으로 그어졌다.

 깁스를 하니 왠지 창피해졌다. 처음에는 사람들과 가능한 안 마주치려고 했는데 어느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되도록 안 움직여야 되는 건 맞지만 발 아픈 게 창피해야할 일은 아니다 싶었다. 있는 그대로 다니자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깁스를 하고 있으니 문득 이미 경험해본 사람들이 자신의 사연을 하나씩 풀어내어 준다는 걸 느꼈다.

 식당에서 만난 한 교수님은 "19xx년에 살짝 미끄러졌는데 뼈에 금이 간 거야"라고 말문을 열었다. 내가 피멍이 들었다고 말하자 "피멍은 정형외과 말고 한의원에서 침을 맞아야 돼.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는 게 제일 좋아. 한 한달 가"라고 말하며 처방과 진단까지 내려주신다. 한 분은 "저도 학교 뒷산에 가다가 무릎이 나간 적이 있어요. 무릎이 너무 아파 천천히 걷는데 전혀 표가 안 나니까 학생들이 잘 안 믿는 눈치이기에 한 번은 짧은 스커트를 입고 가서 걷어 보여주려는 시늉을 했더니 학생들이 '됐어요. 됐어요'라며 손사래를 치더군요"라며 내게 한바탕 웃음을 선사한다.

 또 다른 분은 "저도 작년에 계단에서 굴러 넘어져 깁스를 했었어요"하며 말을 걸어주신다. 서로 맞장구를 치다 헤어질 때 "지금은 괜찮으시죠?"하니까 "지금도 간혹 쑤셔요"하며 내 통증을 누가 알아주겠느냐는 듯 묘한 임팩트를 남기고 떠난다. 처음에는 내 발만 걱정하다가 다시 만났을 때 자신이 처음 대학 강의를 하던 날 오른팔에 깁스를 해서 필기 한 번 못한 이야기를 하며 반 깁스는 깁스로 안 쳐준다는 농담으로 내 염려를 풀어주려는 분도 있는가 하면, "예전에 저는 깁스하고 목발을 짚고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 계단을 오르내렸으니 어땠겠어요?"하며 위로하듯 자기 경험을 들려주는 분도 있다. 내가 궁금해져 "어머, 어떡하다가요?" 물으니 "식칼이 발등에 떨어져 인대가 끊어진 거예요"한다. 어느새 내 발은 잊고 발등에 칼이 떨어지는 상상을 하다 안도의 숨을 내쉰다.

 한 교수님은 내 발을 보고 얘기한 다음날 불쑥 다시 전화하시더니 사모님께 지나가는 말로 내 얘기를 했더니 내가 주중에 혼자 청주에 있는 줄 아시고 운전하기 힘들 테니 딸들 빈 방에서 지내면 어떻겠느냐고 사모님께서 물어보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운전은 교수님께서 해주시라고 하시며. 나는 두 분께 너무나 감사하다고 인사드리며 사양했지만 빈말이라도 정말 상상도 못할 감동이다. 깁스가 오래가면 어쩌나 걱정은 되지만 평소 들어보지 못했던 히든 스토리에서 적잖은 공감과 위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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