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학교가 왜 이지경일까? 성실히 교직생활을 하고 있는 일반선생님들에게 미안하지도 않은가? 한숨이 나온다. 그동안 필자의 40여년 교직 생활까지도 부끄러워 숨기고 싶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사건으로 교육이 멍들었다. 분개 수위를 넘어 섰다. 입술이 마르고 갈라 터졌을 피해 학생과 동료들. "내가 크면 가만있지 않을 거야. 말할까 말까" 성추행 공포로 치를 떤다. "바로 당신이었잖아?"

 얼마 전, 충북 모 초·중·고등학교에서 경쟁이라도 하듯 교원의 성추행 사실이 드러나 세간을 발칵 뒤집었다. 몹쓸 짓이란 걸 알면서 노리개 삼아 손장난과 말장난을 즐겼다. 갈수록 재미를 붙여 무감각해진 것이 문제다. 횟수가 늘어나다 보면 습관으로 굳는다. 이에 대해 어떤 변명을 하거나 얼굴을 들 수도 없다. 교육자 수난시대다. '세상에 선생님 보다 존경 대상은 없다'는 말이 있는데 이를 도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

 필자는 '학생의 인성 보다 교원이 먼저여야하고, 학교가 변화와 혁신에 속도를 낼수록 보여줄 수 있는 역량은 바로 참 교권'임을 지속적으로 집필(2011년 6월30일자. 본보 '이 땅에 선생님은 없는가?' 외 8회)해 왔다. 차라리 절반 이상 꾸민 이야기였음 좋으련만 얇은 냄비 속을 끓는 라면처럼 요란하기만 하다. 뭘 숨길 것도 없고 더 이상 감춰봐야 도움이 될 것도 없으니 이 때다 싶어 추행 사례가 마구 쏟아져 나온다. 혀마저 오그라든다.

 요즘 아이들 말로 "헐~" 아닌가. 짝퉁교원 몇이서 사도(師道)의 권위를 무너뜨렸다. 잊혀지는 스승상을 아이들은 먼저 눈치 챈다. 대안이 없지는 않다. 지식위주 교사 채용시스템부터 손 봐야 한다. '인간애'를 모르는 사람이 안정적인 직업을 전제로 교단에 오르는 것이 문제다. 교육 매뉴얼과 사명감 보다 당혹스런 단맛에 빠지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교육 문제가 불거질 때 마다 남의 일처럼 비겁하다. 그러고도 염치를 모르는 변명을 해댔다. 호되게 맞아야 비로소 아픔을 느끼는 어리석음이 걱정스럽다. 학교 내 사안에 어정쩡한 전문가가 왜 이리도 많은 건지. 이 사람 이 말, 저 사람 저 말에 오히려 혼란스럽다. 밖에서는 현장성 없는 대안을 들고 나와 온통 시끌시끌하다. 단번에 뿌리 뽑을 냥 설치는가 하면 넘치는 이론적 대안으로 오히려 혼란부터 부추긴다. 정작 학교 울타리 안의 차분한 대응에 맞불처럼 '뭣들하고 앉았느냐?'며 정신까지 뺀다.

 학교도 그렇다. 모든 이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찌된 일인지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발생한 성관련 사건사고를 보면 전혀 '가르치는 사람'의 일탈이라고는 볼 수 없다. 파격적인 자숙을 외면하면 또 언제, 어떠한 파멸이 자초될지 위태롭다. 학교장 혹은 일부 교직원, 학부모와 학생들의 독자적인 자구 행보만으로 어렵다. 교원 성범죄에 대한 법령 개정 및 영구 퇴출 등 보완책을 서두르고 있으나 법이 물러서가 아니다. 땜질 처방은 팔짱 낀 채 구경하는 꼴과 같다. 비장한 각오로 교원선발 시스템부터 확 바꿔보자는 호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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