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사설] 40대 아파트 관리사무소 여직원이 관리비 1억9000만 원을 횡령하고 자취를 감췄다. 몰래 가져다 쓴 돈은 무려 5년에 걸쳐 빠져나간 것이다. 그런데도 관리소장을 비롯한 어느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자신들에게 부과된 것에 의문을 갖지 않고 꼬박꼬박 돈을 낸 입주민들의 관리비는 엉뚱한 곳으로 새나갔다. 충북 청주에서 일어난 일이다.

지금까지 아파트 관리비는 거의 관리 사각지대에 빠져있다시피 했다. 한 둘이 모여 사는 것도 아니고, 못 잡아도 수백 명이 살고 있지만 관리비를 꼼꼼히 들여다보는 게 사실상 힘들다. 입주민들 중 그렇게 할 사람도 없고, 그런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도 별로 없다. 개중에 내가 사는 집, 내가 내는 돈에 신경을 쓰는 적극적인 사람이 있어야 그나마 조금 주의를 기울일 뿐이다.

그러다보니 아파트 관리비는 어떻게 걷혀져, 어떤 곳에 쓰이는지 의문만 가질 뿐 정확한 파악이 되지 않는 곳이 많았다. 그 결과 아파트 관리비는 '눈먼 돈'으로 불릴 지경까지 갔고, 고양이한테 생선 맡긴 격으로 관리사무소 여직원이 돈을 챙겨 달아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드러난 아파트 관리비 문제는 특정 아파트, 특정 지역만이 아닌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바로 얼마 전인 지난 3월에도 청주에서 역시 관리사무소 여직원이 관리비 1억5000만 원을 빼돌렸다가 구속됐다. 관리비 횡령은 구입하지 않은 물품을 산 것처럼 서류를 조작하거나, 관리소장에게 결재 받은 것보다 많이 인출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상황은 조금씩 바뀌었다. 주민들도 자신들의 호주머니에서 나간 관리비에 하나 둘 관심을 갖게 됐고, 2014년 배우 김부선 씨가 자신이 사는 아파트의 난방비 비리 폭로를 계기로 세인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이런 사회적 관심은 이후 공동주택법 개정과 자치단체의 관련 조례 제정으로 이어져 청주시가 조례에 따라 올 상반기 아파트 관리 실태를 조사한 결과 70건의 문제점이 지적됐다. 관리사무소 여직원의 억대 횡령도 이 과정에서 드러났다.

세종시에서는 현 시장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 대한 자치단체의 감사가 진행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주부터 이번 주까지 2주일간에 걸쳐 변호사, 회계사, 주택관리사 등 전문인력이 투입됐다. 이번 감사는 조례가 만들어진 뒤 처음으로 입주민들의 청구에 의한 것이다. 입주민들의 감사 청구 이유도 역시 관리비 문제가 주된 요인이다. 시는 감사 결과에 따라 사안이 중할 경우 사법기관 고발까지 검토하고 있다.

지금은 전체 주택의 49.6%(2014년 기준), 절반이 아파트인 시대다. 또 다른 공동체 생활이 형성되는 것으로 이런 곳에서 관리비 유용·횡령을 비롯한 비리가 터지고, 부조리가 횡행하는 건 입주민들의 갈등과 불만을 일으키는 한 요인이 된다. 그런데도 까뒤집으면 문제가 없는 아파트가 없을 정도로 불·탈법이 성행하고, 감사의 칼날을 들이대면 안 걸리는 곳이 없을 만큼 허점이 노출되는 건 입주민 보호 차원에서도 개선돼야 한다. 그런 면에서 아파트 구성원과 자치단체의 관심이 필요하다. 그게 조례 제정의 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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