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문 닫힌 폐교에서 종소리를 듣는다. /선생님 말씀 그리운 체취, /군데군데 잡풀로 쓰다만 편지되어 돋았다. /딱지치기 하다가 종자까지 마르면 /분이 풀리지 않아 굴렁쇠 앞세워 운동장을 달렸다. /흑백사진 속 까까머리들 /회초리 수만큼 자란 걸까 /잠꼬대까지 확인하신, '바담풍'의 잔영에 화음을 붙인다. /필자의 시 '가르침의 화음' 전문이다.

 그동안 교육부의 학교 신설 승인율은 2013년 72%, 2014년 54.9%, 2015년 37.1%로 하락했다. 2020년까지 초중고생 65만 명의 감소 전망과 함께 신설 억제정책을 펴고 있다. 바로 민원이 폭주한 충북교육청의 학교신설이 녹록찮은 이유다. '학생 감소에 따른 학교 통·폐합' 단순논리에서 벗어나 학교신설과 유지, 통폐합 병행논리를 펴온 교육청 입장으로는 농·산촌과 구도심 등 공동화 우려 지역 의견을 100% 수용하고 있는 상태다.
 

누구를 위한 학교?

 '적정규모학교 육성(소규모학교 통폐합) 및 분교장 개편 권고기준'을 제시해 놓고 엉거주춤한 교육부, 정책 취지에 비해 신뢰성 훼손만 부채질하는 건 아닌가? 도대체 순조로운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무조건적으로 걸고 넘어져도 대안은 없다. 실제 대상학교와 전혀 무관한 '썸씨' 여럿까지 되레 반대의 머리띠를 두르고 앞장서니 정작 소규모학교 짝짓기는 부지하 세월 아닌가. 핑계야 붙일 나름이지만 결국 누구를 위한 통·폐합인가를 짚어보면 의견은 쉽게 좁혀진다. 이상적 리더십은 강력하게 당길 줄도 알아야하고 때로는 권유하며 스스로 모범을 실천하는 자체다. 교육은 '멀리 보고 묵묵히 끌어야할 역경의 빛'이라지만, 학교통합이 절절할 때 걷어 부치고 나설 사람 찾기란 흔하지 않다. '가만있으면 중간 갈 텐데 긁어 부스럼 만드느냐'는 뒷짐 짓기다. 자칫, 왕따 되고 동료 간 '소경 제닭 잡기' 화살에 얽히기 십상(十常)일 수 있다.


소통 리더십의 주효

 학교도 경쟁시대다. 외형적인 화려함 보다 내적으로 견실한 교육과정 운영에 학생들이 모인다. '통·폐합'은 시대적 요구다. 물론, 학생 수나 경제적 측면만 따져서도 아니다. 통합의 절실함을 공감하면서 '지역 공동화 가속'을 빙자한 꼼수는 여전하다. 충북의 경우, 자생적으로 2017년 3월1일자 자율 통·폐합을 일궈낸 추산초가 주목 받고 있다. 오로지 교육 사랑을 무한정 쏟은 학교장의 지략과 학생 학부모 지역사회 신뢰를 촘촘히 챙겨온 최고 걸작이다. 어디, 그 과정이야 매끄러울 리 없다. 숱한 돌부리로 중간 포기도 여러번 곱씹었을 게 아닌가? 목도초와 통합을 일궈낸 후 적응교육 및 행사 프로그램 등, 학생과 학부모 교직원은 이미 하나된 지 오래란 주위 칭찬 속에 제2, 제3의 나비효과를 기대한다. 추산초 신사호 교장의 진정성 있는 대화가 주효했다. 그게 바로 소통 리더십이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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