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도시 아이들의 생활터, 그야말로 비집을 틈만 있으면 떼를 지어 용케 놀이에 빠지는 게 미안하다. 안전과 시설면에서 취약하기 그지없는 곳인 줄도 모르고 아이들은 신난다. 미끄럼틀, 그네가 자리 잡은 공원엔 술병과 안주 부스러기 천지니 위기를 자초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충북도내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 대상 '학교폭력 온라인 실태조사' 결과 유독 초등학교만 폭력이 늘었다. 대부분 교실과 복도, 운동장 등에서의 언어폭력과 집단따돌림, 신체폭행, 금품 갈취, 강제 심부름, 강제 추행 순으로 심각성을 강조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교육을 앞 순위로

 초등 고학년은 몸에 근육이 붙기 시작하고 또래 관계까지 예민해지는 시기다. 뿐만 아니라.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가족기능 약화도 간과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복지 투자와 공급면에서 엇박자 순위가 높다. 이른바 청년 수당 등 복지 포퓰리즘으로 예산은 후한데 비해 아이들이 마음껏 뛰며 소리 지를 공간을 늘리는 일엔 꿈쩍하지 않고 바른 인성만 닦달한다면 너무 가혹한 국가폭력이다.

 따지고 보면 저출산 원인도 결국 누리과정 실패에 있다. 정말 '무상 보육'만 믿고 아이를 낳았다간 낭패란 걸 혹독하게 경험해 왔다. 정부의 청소년복지는 3개부에서 담당하는데, 교육전반은 교육부, 학교 밖 복지는 여성가족부, 아동복지 영역은 보건복지부 소관이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불거졌을 때, 책임보다 현장성 없는 대책으로 생색내고 몇 개월짜리 땜질식 예산을 풀어 당장 급한 불만 끄려는 난맥상이 자주 비쳐진다.

 폭력 예방을 한답시고 학교마다 전담경찰관을 배치했으나 역할은 손을 놓은 채 결국 치욕스런 폭력을 그들이 저질렀다. 이렇듯 들쭉날쭉한 아동복지정책으로 혼란에 빠지니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 몫이다. 진정한 보편적 복지의 출발은 '아이를 먼저, 교육을 앞 순위로' 생각하는 정책부터인데 기대보다 우려가 크다.


선생님의 손길에 정답이

 폭력 피해 학생은 학교 공포증에 걸려 있다. 피해 사례를 보면, 그 멘탈 때문에 학교를 벗어나면 금방 괜찮다가도 입술과 가슴이 마르고 터진다. 마구잡이 언어와 행동을 반항했다가는 더 혹독한 시달림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고통이 따른다. 체벌대신 처벌 쪽으로 무게를 둔 선진국의 '대체 벌'도 신경 쓰인다.

 선생님 입장에서 학생의 용변 장소까지 따라다니며 하나의 몸통이 될 순 없으나 폭력 70% 이상이 학교생활 중에 발생한 것으로 볼 때, 적극적인 예방보다는 사후 합의나 대책위원회, 전학 등 소위 뭉그적 대응이란 의구심마저 든다. 학교는 학생 행복을 위해 디딤돌을 놓는 곳이다. 학교와 폭력은 결코 공존할 수 없다. 더불어 함께하는 토양에서 견실한 미래의 힘인 인성을 다지는 일, 결국 선생님만의 손길임을 어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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