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영 서원대 교수

[황혜영 서원대 교수] 15세기 플랑드르 화가 얀 반 아이크(Jan Van Eyck)의 작품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1434)는 당시 플랑드르의 부유한 상인 아르놀피니가 오른 손을 들고 결혼서약을 하며 다른 손으로 신부의 손을 잡고 있는 부부의 전신 초상화이다. 이 작품은 아르놀피니 부부가 잡은 손에서부터 옷감의 감촉까지 생생하게 느껴지도록 세밀하게 그려진 의상, 벗어 놓은 신발, 강아지와 방안의 소품 하나하나에서도 상징적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중에서 그림 속 공간의 심연에 삽입되어 마치 태풍의 눈과 같은 미학적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 부부의 맞잡은 손 위로 보이는 볼록 거울이다.

 이 볼록거울은 지난번에 소개한 그림 속에 도입된 그림이나 거울, 이야기 속의 작은 이야기와 같은 예술 속 격자기법을 의미하는 '미자나빔(mise en abyme)'의 풍부한 뉘앙스를 보여주는 예가 된다. 우선 볼록거울은 전체 그림의 틀에 들어오지 않는 아르놀피니 부부가 선 실내공간의 전면을 반영해준다. 이 작은 볼록거울은 그림의 전체 틀 바깥에 위치한 영역을 그림 안으로 도입하여 닫힌 그림의 틀을 열어주고 경계를 확장시키는 미학적 효과를 가져 온다.

 거울 속에 비친 열린 방문 사이로는 마치 실내를 들여다보는 관객처럼 서 있는 두 인물이 보인다. 두 인물은 화가와 그의 조수로 알려져 있는데 이 결혼식에 참석한 증인의 역할을 한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처소 깊숙한 공간에 무심한 듯 걸려 있는 볼록 거울은 이들 부부의 정결한 서약의 결정적인 순간의 모습을 반사하여 기념하면서 그 순간을 함께 나누는 이들의 모습을 소개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볼록거울 위의 벽에 써진 "1434년 얀 반 아이크 여기에 있었다"라는 의미의 문장은 거울 속 증인의 모습과 함께 다시 한 번 부부의 결혼 서약을 확증한다. 그러니까 이 문구는 실제 방에 써진 것이 아니라 그림의 서술 차원에 써진 낙관이나 서명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마치 벽지 위의 장식처럼 실내 공간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그림 속에 그려진 내용의 차원과 그림의 서술 차원의 두 영역을 자연스럽게 하나로 이어준다.

 볼록거울 속 이미지는 전체 그림 틀 전방에 크게 그려져 있는 아르놀피니 부부의 전신상을 매우 작은 모습으로 축소하여 원근법으로 입체감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인물의 앞모습과 동시에 보여줄 수 없는 뒷모습을 그림 속에 함께 담아내면서 평면으로서의 그림의 한계를 극복하고 입체감과 깊이를 담아내며, 전면과 후면의 부분 이미지들을 통합하여 전체 이미지에의 욕망을 실현한다.

 볼록거울 속 이미지는 부부의 초상을 다시 한 번 반복하고 있는 점에서 그림의 자기반영성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그것은 그림 속 부부의 전면을 새로운 각도로 포착하며, 그림 바깥에 있는 영역을 그림 안으로 살짝 밀어 넣어 동일성 속에 차이를 만들고 반복하면서도 뒤집고 배반하여 이질동형의 미자나빔 고유의 반복의 유희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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