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사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호남에 참회와 사과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구애했다. 김대중 대통령 때 국정에 협조 안 한 것, 국민이 뽑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탄핵한 걸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호남이 더는 권력의 변방이 아닌 주 무대가 될 수 있다며 연대의 손짓을 했다. 세상 참 많이 변했다. 여당 대표가 야권의 본거지인 호남 지역을 향해 지난날 잘못을 꺼내 들며 잘해보자고 읍소를 하니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이 맞긴 맞는가 보다.

이 대표의 발언은 한 편에선 정치에서 지역 구도를 탈피하려는 노력이라는 평을 듣지만, 다른 한 편에선 망국병이라 일컫는 지역 구도에 결국 의지할 수밖에 없는 오늘의 대한민국 정치 현실을 집권 여당이 대변했다는 소리까지 듣는다. 또 그가 대표가 될 때 공약으로 내걸었던 '대통령선거에서 호남권 지지 20% 확보'를 위한 전략으로도 보지만 어떻든 거의 적대적 관계였던 호남을 향해 화해의 몸짓을 취했다는 건 나름의 의미가 있다.

이렇게 집권당 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사과 표명을 하고, 호남에 앞으로 잘해보자며 손을 내밀었다면 작은 것부터 실행돼야 한다. 그 하나가 충북 청주의 시골구석 미술작업장 한 귀퉁이에 쓸쓸히 버티고 있는 노 전 대통령 추모 표지석의 제자리 찾기다. 이 표지석은 제작 때부터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갈 곳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 지금에 와 있다. 당사자의 공과(功過), 국민의 지지 정도, 정치적 해석 등을 떠나 일국의 대통령을 추모하는 표지석이 의탁할 곳을 찾아 떠돌이로 흘렀다는 게 씁쓸하다.

이 표지석은 2009년 7월 노 전 대통령의 49재를 맞아 시민들이 호주머니를 턴 400만 원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설치 장소를 놓고 보수와 진보 단체, 시민, 추모위원들의 의견이 엇갈렸고 자치단체의 획일적 행정 해석으로 불협화음이 일었다. 그 결과 청주 상당공원, 수동성당, 농가 창고를 전전했다. 한때 충북도 관계자가 '청남대에 대통령기념관이 완공되는 2013년 그곳에 두겠다'고 했지만 이행되지 않고 있다. 개인이 공원용지 안에 있는 사유지를 내놓겠다고도 했지만 이마저 공원용지에 개인 추모비 설치는 안 된다는 것 때문에 없던 일이 돼 버렸다.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로 옮기는 것도 얘기됐지만, 충북 사람들의 정성이 담긴 것인 만큼 지역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묻혔다. 이런 방황은 2011년 이홍원 화백이 자신이 살면서 작업 공간으로 쓰고 있는 옛 청원군 마동 창작마을로 옮겨오면서 고단한 여정을 일단락했다.

지름 1m 반원형 좌대 위에 높이 75·폭 60㎝로 만들어진 추모 표지석이 이젠 제대로 관리돼야 한다. 비록 정부나 자치단체가 아닌 시민단체 주도로 제작된 것이지만 시대 상황을 반영한 참여물인 만큼 그 상징적 무게가 인정받아야 한다. 이 화백은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젠 지금 있는 곳을 안식처로 삼아 누구나 찾아볼 수 있게 하겠다"고 하지만 지나온 역정을 정리하는 의미에서도 개인에게만 부담을 안길 수 없다. 더구나 가까운 청남대에 대통령기념관 같은 곳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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