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서울취재본부장

 

[이득수 서울취재본부장] 지난 22일 저녁 종로 네거리는 농민 시위대가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전국에서 올라온 농민 6000여 명이 대학로에서 전국농민대회를 마치고 광화문 쪽으로 행진하는 중이었다. 수백 개의 만장이 휘날리고 괭가리, 징, 북, 나팔 소리와 인파가 차도와 인도를 모두 메웠다. 농민들의 주장은 플래카드에 쓰인 "밥쌀 수입 지×말고 쌀값폭락 책임져라"는 글에 함축돼 있었다.

 올해는 유례없는 풍년이라고 한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처럼 농사를 의존해 살아왔던 전통사회에선 풍년이면 농악대를 앞세워 동네를 돌며 잔치를 벌였지만 농업이 피폐한 산업화시대엔 정 반대다. 풍년일수록 농민들이 더 어려워진다. 쌀값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농민단체들은 쌀값이 30년 전 가격으로 떨어졌는데도 정부는 올해 6월부터 미국산 밥쌀을 수입하고 있다며 정부를 성토했다.

 무역자유화, 관세철폐, 상품·서비스·자본 시장 개방을 골자로 하는 현재의 글로벌경제시대에는 농산물 시장도 개방해야 한다. 비교우위 무역에 의해 우리나라보다 싸게 생산된 농산물이 특별한 제한 없이 수입돼 시장을 차지하고 있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당시 국내 농가 보호를 위해 쌀은 예외적으로 수입관세화 유예기간을 뒀다. 대신 최소시장접근(MMA) 방식으로 의무 수입해왔다. 2014년까지 두 차례 관세화를 유예 받는 동안 WTO가 정한 의무수입물량도 해마다 늘어나 2014년에는 40만 9000톤으로 2013년 쌀 소비량의 9%나 차지했다.

 정부는 차라리 수입 개방이 관세화 유예로 과도하게 의무물량을 수입하는 것보다 유리하다고 판단해 그해 7월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정부가 쌀을 관세화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한국의 쌀 시장 개방을 선언한 것이다. 쌀 관세율은 513%로 결정했다. 관세화를 해도 그간 수입해온 저율관세 혜택을 부과받은 의무수입물량(40만 9000톤)은 매년 계속해서 저율관세로 수입을 허용해야 하는 부담도 안아야 한다.

 쌀 관세화 선언 당시 정부는 농가소득 안정과 주식인 쌀 산업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여러 가지 방안을 내놨다. 농가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쌀농사를 짓는 농가에 대한 직불금 인상, 쌀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업농이 규모화, 쌀 소비 감소에 대비한 소비촉진과 가공산업 육성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이런 정책들이 과연 당초의 목표에 접근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정치권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맨날 국회에서 싸움질이나 했지 농민과 농업을 위해 성의를 갖고,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실효적 성과가 있는 법안을 제대로 만들어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야 한다. 정말 우리 농촌과 농업을 살리는 길이 무엇인지 정권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 매년 100억 달러 이상의 식량을 수입하는 나라에서 쌀이 겨우 자급했다고 절대농지를 마구 허물어 공장이나 건축물을 지을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발상은 정상적인 농업 정책이 아니다. 곧 도래할 '식량무기 시대'를 도외시한 대증요법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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