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철 교육문화부장] 대학원 1학년 때였던 1989년 여름 일본에 사는 누님댁에 갔던 나는 난생 처음 집안이 흔들리는 경험을 했다. 방안에 있는데 갑자기 벽과 천정, 다다미 바닥 등 집 전체가 흔들리면서 장식장에 놓여있던 물건들이 동시에 요동치기 시작했다. 순간 "이게 뭐지? 왜 이러지?"라는 생각과 함께 공포가 몰려왔다.
깜짝 놀라 불안해하는 나에게 누님은 빙그레 웃으며 "이게 바로 지진이란다. 일본에서는 수시로 겪는 일이야"라며 안심을 시켰다.
그로부터 27년이 지나 중년이 된 어느 날, 그때와 똑같은 흔들림을 느낀 나는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그다지 크지 않은 흔들림을 느끼고는 그냥 "지진이 왔구나"라는 생각만 들었다.
하지만 처음 지진을 겪어본 대부분의 시민들은 그 순간 심각한 공포에 떨었다고 말해 처음 지진을 겪는 사람들은 놀라거나 겁을 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처음 지진을 겪어본 대다수의 시민들이 공포를 느꼈고 손님을 만나다가도 중간에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어떤 학부모는 학원에 전화를 걸어 자녀를 집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그 학부모는 나중에 살아도 함께 살고 죽어도 함께 죽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고 말해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 시각, 야간자율학습을 하던 충북도내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청주의 모 고교에서는 교사가 지진에 놀라 운동장으로 나간 학생들의 이름을 적어오라고 시켰는가 하면 다른 고교에서는 교실 밖으로 나가는 학생들에게 욕설을 했다고 한다.
또 다른 학교에서는 고3 학생들에게 "너희들은 지진이 나든 말든 공부만 하면 된다"고도 했다.
지진의 강도가 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성인들도 놀라서 일찍 귀가할 정도로 놀랐다면 학생들은 어땠을까? 이름을 적어야 하는 대상은 지진대피요령에 따라 운동장으로 나가려던 학생들이 아니라 이를 막고 건물 내부에 잡아두려던 교사들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충북도교육청은 처음에는 지진 발생 두시간여만에 학생들을 귀가시키라는 지시를 했다가 이와 관련한 보도를 하자 두 번째 지진이 발생했을 때는 20여분 만에 신속하게 각급 학교에 야간자율학습을 중단하고 학생들을 귀가시킬 것을 지시했다.
자연재해를 막을 수는 없지만 거기에 인재까지 더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건물이 무너지지 않았다고 해서, 땅이 갈라지지 않았다고 해서 지진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철저한 훈련과 대비를 통해 소중한 인명을 지킬 수 있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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