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영 서원대 교수

[황혜영 서원대 교수] <위폐범들Les faux-monnayeurs>(1926)은 20세기 프랑스 작가 앙드레 지드의 작품이다. 지드는 자신의 많은 작품들 중에서 유일하게 이 작품만을 소설로 명명하였으며 소설 장르에 대한 실험정신을 살려 총체적인 시각을 담아내고자 하였다. 지드는 이 작품을 구상해나가는 과정을 자신의 일기와 <위폐범들>과 다른 별도의 책으로 발행한 <위폐범들의 일기>에서 소개하고 있다.

 그는 1893년 자신의 일기에서 '방패꼴 문장의 중심부에 또 하나의 문장을 새겨 넣기'라는 의미로 미자나빔(mise en abyme) 용어를 처음 만들어 작품 속에 또 작은 이야기나 작품을 넣는 상감기법 또는 격자식 이야기의 형식을 이 용어로 설명하는데, 이 개념 또한 자신이 생각하는 작품 구성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서 착안한 것이다. 실제로 작품에서는 에두아르라는 인물을 소설가로 설정하여 그가 쓰고자 하는 소설의 방향과 주제, 내용에 대해 구상해나가는 과정 자체를 보여주고 작품 마지막에 그가 쓸 소설 제목을 지드의 작품 제목처럼 <위폐범들>이라고 지음으로써 원래 지드의 작품 탄생과정이나 작품 자체를 반영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기법으로 작품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과 동시에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함께 보여주게 된다. 에두아르가 "내 작품의 '깊은 주제'라고 일컬을 만한 것은 아마도 현실 세계와 우리들이 그 현실로 만들어 낸 표현 사이의 겨루기다"라고 하듯이 현실을 보여주는 것과 현실을 양식화하려는 노력 사이의 힘겨루기가 작품을 역동적으로 이끌어간다. 그리고 작가는 미리 정해놓은 결론으로 소설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작가를 이끄는 방식의 작품을 추구하여 작가 자신이 삶에 치열하게 부딪치면서 경험해나가는 자기성찰을 작품 속 인물들의 자기투쟁과 지속적인 가치관의 수정에 반영한다.

 이 작품은 하나의 사건을 여러 인물들의 시선을 통해 다른 각도에서 반복해서 서술하거나 한 인물의 이야기 속에 다른 인물의 이야기를 넣기도 하고 유사한 형태의 여러 인물들의 관계를 옴니버스 방식으로 이어나가는 등 미자나빔의 여러 변용을 구상하여 단일한 초점을 해체시키고 다시점의 구성을 만든다. 다양한 인물들의 관계가 비슷하게 반복되면서도 동일하지는 않게 변주를 드러내는 기법은 처음 나온 주제가 다른 화음에서 비슷하게 반복되어 2개 이상의 화음부에서 주제부가 반복되는 푸가 기법에서 착안한 것으로 작품에 단순한 길이의 서술 대신 넓이와 깊이의 효과를 준다.

 에두아르가 이제 막 자신의 소설에 착수하는 순간 끝나는 지드의 소설은 앞으로의 소설의 새로운 시작을 열어준다. 또한 기존 소설의 관습을 거부하고 소설의 본질에 대해 탐구해나가는 과정 자체에 가치를 두고자 하는 이 소설은 소설 자체에 대한 소설 양상을 띠게 되는데 이러한 소설 자체를 반영하는 소설이 1950년대 누보로망에 와서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을 볼 때 <위폐범들>은 또 다른 관점에서 다음 세대에 탄생할 앞으로의 소설의 개화를 예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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