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브랜드, 무술 메카 못 살려 유명무실

[충주=충청일보 이현기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배출을 축하하고 유엔의 평화 유지활동을 기리기 위해 추진된 충북 충주의 '유엔평화공원'(현 세계무술공원)이 지자체장 교체를 거치며 무술과 놀이시설 위주로 재편돼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현 세계무술공원은 반 총장이 세 살부터 고교까지 자라고 어머니와 형제들이 생활하는 충주에서 지난 2009년 유엔평화공원이란 이름을 걸고 첫 삽을 떴다.

김호복 전 시장의 제안으로 시작된 유엔평화공원은 유엔 총회장을 본뜬 유엔기념관을 중심으로 세계 평화를 상징하는 유엔의 이념을 배우는 교육장으로 구상됐다.

당시에는 국비와 민자 등 2770억 원을 투입해 63만 4000㎡ 부지에 유엔기념관과 박물관, 호텔·콘도, 위락시설, 생태공원 등을 갖추는 원대한 프로젝트였다.

특히 유엔기념관에는 실제 모습을 그대로 담은 모의 유엔총회장, 역대 사무총장의 활동 모습을 기록한 전시관이 들어서 전국 청소년들의 체험학습장으로 기대를 모았다.

반 총장도 2009년 8월 충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유엔평화공원이 성공적으로 조성되길 바란다"고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듬해 김 전 시장이 낙선한 뒤 예산 확보에 차질이 빚어졌고, 시정을 이어받은 우건도 전 시장은 공원 명칭을 '세계무술공원'으로 변경하는 등 무술을 중심으로 공원의 색깔을 바꿨다.

정부는 유엔기념관 등의 국비 지원에 난색을 표했고, 충북도도 예산편성 지침을 바꿔 관광지 개발사업에 대한 도비 지원을 없애버렸다.

공원의 핵심 조성물이던 유엔기념관이 무산되고, 부산 유엔기념공원과 명칭 중복 문제 등도 걸림돌이 됐다. 또 호텔과 콘도 등 3단계 민자사업을 맡기로 했던 기업체가 투자를 포기하면서 추가 조성이 중단돼 반쪽 공원이 됐다.

최근에는 조길형 시장이 어린이들을 위한 라바랜드와 나무숲 놀이터를 조성해 호응을 이끌어 내고 있지만, 반기문 브랜드를 활용하는 공원 정체성 회복의 실마리를 찾지는 못하고 있다.

조만간 유네스코 국제무예센터가 들어설 예정이지만 충주세계무술축제는 격년제로 축소됐고, 그나마 무술과 관련된 무술박물관은 빈약한 콘텐츠로 유명무실한 상태다. 결국 지금은 '유엔'도 '무술'도 없이 정체성을 상실한 단순 공원에 그치고 있다.

시민 A씨(53·연수동)는 "이 정도 대규모로 훌륭한 기반시설을 보유한 공원이 단순 휴식공간에 그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면서 "장기적 안목으로 충주의 소중한 자원인 이 공원에 의미를 부여해 가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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