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 원안 시행 한달도 안돼 불만 계속 제기
자연스럽던 일상이 '범법'… 관계단절도 우려
혼란 막기 위해 신속한 개정 필요 목소리 커져

[서울=충청일보 이득수기자]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청탁금지법)에 대한 국민 불만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28일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간 청탁금지법은 공무원과 공공기관 종사자, 공·사립 교직원, 언론사 임직원 등과 그 배우자 등 직접 적용 대상자가 400만 명 정도로 추산되지만 학교·병원·관공서 등에 민원이 있는 일반인들도 해당되기 때문에 실제로는 5000만 국민 전체가 대상이다.

시행 전부터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둘러싸고 시행 연기, '3·5·10' 기준 완화 요구과 원안대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 치열한 논쟁을 벌였으나 국민 대다수(70% 이상)가 극렬하게 수정에 반대했고 정부 역시 대통령의 '보완 필요' 지적에도 불구, 국민권익위원회 원안대로 시행에 들어갔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8월 11일 새누리당 신임 지도부와의 청와대 오찬 자리에서 청탁금지법 시행령 수정 건의에 대해 "해결이 필요한 문제"라고 밝혀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지만 농축산부 등의 변경 요구에 부처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결국 시행 후 법 개정을 통한 보완으로 굳어졌다. 정치권도 여론의 역풍을 겁내 수정하자는 목소리를 내지 못 했다.

그러나 예상대로 시행 한 달도 안 되는 동안 이 법과 관련해 질문과 의문이 쏟아지며 나라 전체를 혼란에 빠뜨렸으며 이 법을 만들고 시행을 주도해 온 권익위 조차 어떤 것이 합법이고 어떤 것이 위법인지를 잘 모르는 사안이 수 천 가지나 노출된 상태다.

공무원·공직자들의 부정부패를 종식시키고자 만든 법이 오히려 공무원의 복지부동을 조장하고 이런 퇴행적 행태를 보호하는 법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와 반대로 공직자와 유관기관의 도장에 목을 매야 하는 민원인들만 골탕을 먹으며 발을 구르게 만든다는 불만이 높다.

더 심각한 부작용은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자연스럽게 이뤄졌던 일상들이 이제는 범법이 아닌가 스스로 의심하고 불안을 느껴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친구들과 점심 한 끼나 저녁 술자리도 거북해졌고, 법 적용 대상자가 된 친구와의 골프는 생각도 못 하게 됐다. 고급 음식점을 비롯한 서비스 업종들은 매출이 반토막 났다고 아우성이다. 동창회나 향우회 모임도 어려워졌고 정기적으로 해왔던 세미나, 간담회, 토론회 등도 취소됐고, 앞으로도 없어질 공산이 크다.

스승의 날 담임 교사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것도 위반이고 목숨이 경각에 달렸어도 치료 일정 조정 부탁도 안 돼 모든 국민이 가까운 사람들과 인간 관계 단절까지 가는 것을 우려해야 할 지경이다.

때문에 국민들의 평범한 일상까지 규제하고 스트레스를 주는 이 법에 대해 일각에선 "간첩들이 우리 국민들을 이간시켜 자멸하도록 만든 법 아니냐"는 극단적인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부작용이 속출하자 19대 국회 정무위원회 여야 간사로 지난해 3월 이 법을 제정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김기식 전 의원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필요하면 정부가 일부 시행령부터 보완해야 한다. 공무원의 복지부동을 조장할 수 있는 부분은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김용태 의원은 '국가적 혼란'을 초래한 데 대해 "청탁금지법 시행을 계기로 권익위의 권한을 확대하려는 조직 이기주의가 만든 참사"라고 지적했다. 김 전 의원은 "문제점들을 알고 반대했지만 정치적으로 입법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정부가 시행 1년 후 문제점을 보완키로 했으나 현실에 안 맞는 부분을 개정하는 것은 빠를수록 좋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충청권 출신인 한 정치 원로는 "취지는 좋다지만 급진적 개혁 법안이 국민의 일상적인 생활을 총체적으로 구속한다면 악법이 될 수 있다"며 신속한 보완과 수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