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국 세광중 교사·문학평론가

[김재국 세광중 교사·문학평론가] 최근 우리 교육에 대하여 비판적 시각으로 일관하는 몇 권의 서적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유형의 서적을 독서하는 데는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말을 바꾸면 호기심에서 출발하여 의구심으로 읽어나가다 씁쓸함으로 마무리를 지었다는 것이 올바르다. 이러한 책들의 장점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고 한 걸음 물러서서 비판적으로 접근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첫째, 작가들의 주장이 너무나 강렬하여 그것이 오히려 독자들의 거부감을 자아내고 가독력을 약화시킨다. 강렬한 목소리는 독자를 감동시키기보다는 작가의 주장에 불신을 자아내는 측면이 강하다. 나그네의 옷은 세찬 바람이 아닌 따뜻한 햇볕이 벗겼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둘째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하게 교육 현장을 지키고 있는 다수 교사들을 인정하기는커녕 일시에 매도해 버린다. 학교 현장의 교사들은 무지하고도 우매한 아큐가 아니라 국가 발전에 이바지해 온 교육적 공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 행동하지 않은 양심을 죽은 양심이라 했지만 대안 없는 저항보다 더 중요한 교육적 현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셋째, 작가들은 사사건건 교육청과 대립하고 관리자와 싸우고 동료교사들과도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거대한 현실이 적이고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가 적이며 무기력한 교육현장이 적이다. 작가를 둘러싸고 있는 부조리한 현실 모두가 적으로 간주된다. 이를테면 저항하는 자는 정의의 사도요 그렇지 않으며 적의 범주에 포함시켜 버리는 식이다.
넷째, 작가들은 가르침의 중독에 빠져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가르침의 중독은 도박이나 알코올 중독보다 더욱 심각하다. 일방적인 가르침보다는 스스로의 깨달음이 중요하며 화해와 소통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어찌 인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섯째, 작가들은 학교 현장을 마치 변하지 않는 화석화된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미 학교는 작가들의 염려보다 훨씬 많은 부분 변했으며 또 변하고 있다. 작가들이 시종일관 강조하고 있는 '저항인'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며 배려하고 자신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지혜와 인내심, 책임감 그리고 가정의 소중함을 길러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여섯째, 작가들은 흑백논리에 빠져 우리가 미덕으로 여겼던 중용의 논리는 들어설 틈이 없다. 누군가의 말처럼 새는 좌측이나 우측으로 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비상한다. 새가 그러하고, 사람이 그러하고, 세상이 그러하다. 죽음처럼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이미 죽음에 이른 사람들까지...
한 때 목소리 큰놈이 이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큰 목소리가 인정을 받았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큰 목소리보다 작은 목소리가 설득력이 있다는 것을 흔히 목격하게 된다. 강렬한 소프라노보다는 저음의 바리톤이 더 설득력이 있다. 우리가 한없이 낮은 숨결로 자신의 몸을 낮추고 흔들릴지언정 뽑히지 않는 식물적 저항에 더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것도 그것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