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영 서원대 교수

 

[황혜영 서원대 교수] 미자나빔은 그림이나 사진, 영화나 문학 등에서 작품의 틀 안에 작은 틀을 도입하는 기법을 의미한다. 일전에 소개한 멜리에스의 <달나라 여행>에서 동일한 사건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을 미자나빔의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13분이 조금 안 되는 짧은 영화 속에 딱 한 번 똑같은 사건이 반복되는 장면이 있는데 그것은 바르방푸이이 박사가 다른 천문학자들과 함께 탄 탐사선이 달에 착륙하는 장면이다.

 우선 영화는 대포처럼 발사된 탐사선이 달에 도착하는 획기적인 사건을 지구에서 포착하여 보여준다. 탐사선이 가까이 다가감에 따라 화면에서 작게 보이던 달이 차츰 확대되더니 어느 순간 이목구비가 있는 사람의 얼굴로 바뀌고 마침내 달의 오른쪽 눈에 대포가 가서 박히자 그 충격에 콧물을 흘리며 입술을 씰룩거린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의 시적 상상력과 유머가 단연 돋보이는 이 장면 바로 다음에 달 착륙 장면이 한 번 더 나온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탐사선의 달 착륙 순간을 달에서 직접 포착하여 이국적인 풍광의 울퉁불퉁한 달의 표면에 우주선이 도착하자 천문학자들이 우주선 밖으로 나와 달에 발을 내딛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는 같은 장면을 단순 반복하는 대신 거리와 관점을 이동하여 지구에서 상상하는 달과 실제 달(물론 멜리에스가 상상으로 그려낸 달이지만)의 모습을 상대적인 시선으로 번갈아 보여줌으로써 역사적인 순간의 감동을 생생히 전달하고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 지구에서 본 탐사선 달 착륙 장면

 그림이나 사진처럼 시각적인 틀이 보이는 작품에서는 미자나빔이 전체 틀 안에 들어있는 작은 틀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영화나 문학과 같이 순차적인 흐름 속에 진행되는 작품에서는 미자나빔이 작품 전체 흐름 속에 하나의 장면이 반복되어 등장하는 방식으로 표현될 수도 있다. 이 영화에서 탐사선이 달에 착륙하는 장면이 반복 등장할 때 장면을 영화 전체 흐름 속에 일부의 이미지가 다시 작은 틀로 삽입된 미자나빔으로 보는 것이다.

 두 번째 등장하는 달 착륙 장면은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에서 원래 그림 속 부부와 달리 정면 대신 축소된 뒷모습을 비추는 그림 속 볼록거울처럼 앞의 달 착륙 장면을 각도와 거리를 바꿔 비추는 반사경과 같다. 지드의 <위폐범들>에도 소설 속의 작가, 소설 속의 소설 같은 미자나빔도 있지만 에두아르와 올리비에가 만나 함께 있는 장면을 몰래 이들을 관찰하는 베르나르의 시점에서 반복해서 보여주는 작품 흐름 속에 녹아든 미자나빔도 있다.

▲ 달에서 포착한 탐사선 도착 장면

 전에 소개한 알랭 레네의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에서 여주인공이 잠든 일본 연인이 잠결에 손을 꿈틀거리는 것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첫사랑 독일 병사가 죽어가면서 꿈틀거리던 손을 떠올리는 장면으로 이동하는 것도 <달나라 여행>에서 달 착륙 장면이 연속해서 이어지는 것과 유사하게 볼 수 있다. 멜리에스는 인류가 달에 첫발을 내딛는 <달나라 여행>의 결정적인 순간을 지구와 달 두 천체의 시각에서 포착한 이미지의 절묘한 결합과 반복으로 영상 서술 위의 미자나빔을 구현한 선구작이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