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서울취재본부장

[이득수 서울취재본부장] 박근혜 대통령이 4일 대국민담화를 발표했지만 국민여론은 악화됐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5% (갤럽 조사)선에 턱걸이 해 지지기반이 붕괴된 수준이다. 95%의 국민이 인정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국정을 수행할 수는 없다. 임기가 얼마남지 않은 레임덕 정권이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아도 공무원사회에서 튕겨져 나갈 확률이 높다.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담화에서 절대 다수 국민들이 원했던 것은 하야 선언, 거국내각 구성, 책임총리 실행, 2선 후퇴 등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대했던 내치 이양이 빠지자 국민들은 다시 격분했고, 지난 주말 전국은 촛불시위로 주요 거리가 메워졌다.

박 대통령은 이런 결과가 올 것을 몰랐을까? 헌정사상 현역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수사를 받겠다 하면 국민들이 박수쳐 줄 걸로 믿었을까?

모든 언론이 예상했던 내치 권력 이양이 빠져 버린 과정을 유추해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전 한나라당 대변인 전여옥의 고백이나 박 대통령 스스로 밝힌 데서 알 수 있듯, 결정적 순간에 결단할 능력이 부족하고, 비선라인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한 박 대통령이 또 다시 민심을 거스르는 악수를 둔 배경에 최순실을 대체할 새 유력 조언자가 등장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한광옥 비서실장이나 허원제 정무수석 등 청와대 참모들의 영향도 상정해 볼 수 있겠지만, 결정적이진 못했을 것이다.

의사 결정에 영향을 준 새 비선으로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가장 의심된다. 유신헌법 초안을 작성했고, 박정희 말기에 청와대 비서관을 했다.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지낸 김 전 실장은 청와대에서 ‘왕 수석’ ‘기춘대원군’으로 불리며 참모진을 장악했다. 과거 정치적 경력도 화려하다. 92년 대선 때 부산 초원복집 사건 때 “우리가 남이가, (YS가 DJ에게) 패하면 다들 영도다리에서 빠져 죽어야 해”라는 발언으로 유명하다.

2004년 국회 법사위원장 때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다. 지역분할주의에 익숙한 인물이다. 박 대통령의 원로자문그룹 7인회 멤버이기도 하다. 최순실과 같은 건물에서 일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김 신임 총리 후보자 발탁은 여론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긴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야당과 협의를 거치지 않아 ‘인준 거부’라는 치명적 빌미를 준 것도 재삼 음미해 봐야 한다.

만일 김 총리 후보자가 내치의 전권을 쥔 책임 총리로서 자신의 추천한 전문가들로 내각을 구성해 초유의 국정 혼란을 수습해 낸다면 내년 대선에서 그는 유력한 주자로 떠 오를 가능성이 높다. 대권도전에 가장 유리한 입장에 설 수도 있다.

이런 결과를 박 대통령과 그의 비선 그룹들은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여기엔 문재인 전 대표도 동감일 것이다. 결국 김 후보자를 국면전환용으로만 사용하기 위해 내치의 ‘전권 이양’을 밝히지 않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상황은 권력 주변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자꾸 외통수로 몰리는 길을 가고 있어 안타깝다. 대통령이 마음을 비워야 자신과 국민이 살 길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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