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사설] 국정 농단, 국기 문란으로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가 국민에게서 외면받고 있다. 최 씨와의 개인적 관계를 끄집어내며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과정을 밝힌 대통령의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을 국민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두 번씩이나 고개 숙인 사과가 민심을 얻지 못하면서 세 번째 사과의 단초가 됐다는 말까지 나돈다. 이 외면하는 민심은 주말과 휴일 전국 곳곳에서 국민을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했다.

집회에 나온 민심은 보수와 진보, 나이와 성별, 출신 지역과 직업을 따지지 않았다. 어린 중학생까지 교복을 입은 채 뛰쳐나왔고, 그동안 시위는 남 일로 여겼다는 사람까지 주저함 없이 길바닥에 앉았다. 민심은 대통령의 책임을 요구했고, 하야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왔다. '탄핵'과 '하야'라는 말을 꺼내는 걸 조심스러워했던 정치권, 특히 차기 대권 주자로 꼽히는 인사들도 이를 거침없이 꺼내며 퇴진을 외치는 상황이 됐다.

민심 표출은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났다. 이달 1~3일 가진 여론조사(한국갤럽)에서 대통령 지지도는 5%로 10월 첫째 주의 29%에 비해 한 달 사이 무려 20%포인트가 빠져나갔다. 역대 최저치로 지금까지 가장 낮았던 김영삼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 6%보다 더 바닥을 쳤다. 당시는 경제 파탄으로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라는 국가 부도 사태를 당했던 때로 그때보다 지지도가 낮다는 건 국민이 작금의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 그대로 드러낸다.

국정은 마비됐다. 대통령은 두 번씩이나 사과하면서 새로 임명될 국무총리와의 역할 분담을 비롯한 향후 국정 운영과 현 사태 수습 방침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지금의 난국을 타개하기 하기 위해 대통령의 인식 전환을 기대했던 야권의 반응은 차가웠다. 대통령이 직전에 사전 협의 없이 불쑥 단행한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 지명에 대한 반발까지 실어 아직도 국정 운영을 본인이 주도하겠다는, 국민 인식과 너무나 거리가 먼 반성문 수준이라고 맹비난했다. 최 씨 개인의 일탈로 몰 뿐 대통령 자신은 책임이 없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몰아붙였다. 아예 '최순실 게이트'가 아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바꿔 불렀다. 야권의 국무총리 인사청문회 거부 방침도 계속되고 있다.

꼬일 대로 꼬인 정국을 풀기 위해선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만나야 한다. 두 번째 대국민 사과 발표에서 대통령이 그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야권의 반응은 정파에 따라 받아들이는 정도가 달라 쉽게 응할 태세가 아니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별도 특검과 국정 조사, 국무총리 내정 철회, 국회가 추천하는 총리 수용 등의 전제조건을 내걸며 물러섬이 없다. 국민의당은 영수회담에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했다.

대통령이 책임을 지든, 국무총리 내정 파행의 앙금을 씻든, 거국내각을 구성하든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머리를 맞대 정국 경색의 해법을 찾고 국정 중단의 늪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분노와 허탈, 좌절과 배신의 충격에 빠진 국민에게 탈출구가 없는 국정 혼란 상태의 지속까지 안겨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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