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형 김천대 교수

[김기형 김천대 교수] 요즈음 시국을 보면 무슨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무어라 할 말이 없어 보인다. 세상에 대해 할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고 말을 한다고 한들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들으려고 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권력자들과 이러한 혼란을 틈타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려는 기회주의적인 정치인들을 보면 무슨 말을 할 수가 없다. 학창시절에는 일제 강점기에 왜 청록파 시인들이 나와 그 시련의 시기에 자연을 노래했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런데 현재의 대한민국을 보면 청록파 시인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영국에서 유학을 하던 시절에 마크라는 영국인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가 문득 생각난다. 어둡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어느 날 밤에 한 장교가 그의 배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그는 항구에서 배 사이에 놓은 건널판 위를 건너다가 미끄러져 바닷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수병 한 사람이 이것을 보고 그를 구하기 위해 물 속으로 뛰어 들었다. 그 수병은 바람과 파도를 헤치고 마침내 물에 빠진 장교를 배의 갑판 위로 무사히 구출하였다. "정말 고맙네. 내일 배안의 모든 동료들 앞에서 자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하겠네" 장교가 말하였다.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장교님. 만약 내가 장교님을 구해주었다는 것을 동료들이 알면, 그들은 저를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수병이 말하였다.

 옆에서 듣고 있던 친구들이 그 장교는 평소에 아주 못된 짓을 많이 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모두 웃었다. 그러면서 지도교수에게 받는 스트레스를 이 이야기를 통해서 웃음으로 풀었다. 대한민국 국민들도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고 있다. 모두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일순간에 잃어버린 채 표류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많은 갈등이 생겨나고 과연 이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을지 두려움이 앞선다. 일이 잘 되어갈 때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이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고 시련의 한 가운데 우리는 외롭게 남겨지게 된다. 그러나 시련과 내적인 두려움에 철저히 짓밟히면서 우리는 새롭게 태어난다.

 내가 근무하는 대학교는 지난 가을 교육부로부터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평가가 나온 직후, 모든 구성원들이 당황해 하였고 내부적으로 많은 불협화음이 일어났다. 모두가 불안해하였고 70여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학교가 흔들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내부에 팽배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련과 두려움을 통해 우리 대학교는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학교에 학생들을 위해 취업을 지원하고 학업 성취도를 높일 수 있는 양질의 프로그램이 개설되어 운영되고 있고 학생들은 이러한 학교의 노력을 바라보고 적극적으로 응답하고 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을 큰 시련이며 두려움이며 넘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물에 빠진 나쁜 장교를 거친 바다에서 건져낸 것은 평소에 그 장교가 괴롭혔던 수병이었다. 나는 물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해낼 수병은 바로 대한민국 국민들임을 확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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