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철 교육문화부장

[김규철 교육문화부장] 우리는 학창시절 '학문에 왕도는 없다(There is no royal road to learning)'는 영어 숙어를 익혔고 지금까지 이를 정설로 알고 살아왔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나 이를 중시해왔던 이 숙어는 최근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한 사건으로 인해 바꿔져야만 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를 통째로 뒤흔든 최순실 사건은 전국민을 실망시켰을 뿐 아니라 국권에 대한 도전으로까지 보이고 있다. 여기에 개인적 이익까지 추구한 것까지 드러나면서 전세계적 망신과 공분을 사고 있다.
여기까지는 4·19학생운동이나 6·29선언을 이끌어낸 1987년 6월의 시민운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 4·19 당시 시민들은 데모에 나선 학생들에게 주먹밥을 해 날라다 줬으며 6·29 때도 일부 시민들은 데모대에 빵과 우유를 전달하고 용기를 북돋아줬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은 한창 공부에 집중해야 하는 학생들이 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가에서 시작된 대자보가 고교에까지 이어졌는가 하면 집회가 열리는 전국 각지의 거리에도 중고교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왜 이들은 거리로 나섰는가?
우리나라의 교육구조는 인성교육보다 입시위주의 교육을 추구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좋은 대학에 가기위해 초교 입학에서부터 12년 이상을 올인하고 있다.
이렇게 모든 학부모와 학생들이 잠을 자지 못하며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동안 한 여학생은 말 1필과 금메달만으로 남들이 가고 싶어하는 유명 사립여대에 당당히 합격했다. 심지어 고교시절부터 대학 재학 중 수업에 제대로 출석하지 않았는데도 고교졸업장을 받았음은 물론 대학에서도 우수한 학점을 받은 것으로 밝혀져 전국의 학생들에게 충격을 줬다.
이쯤되면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만큼은 '학문에 왕도는 있다(There is royal road to learning)'로 숙어를 바꿔야 할 것이다.
이렇게 쉽게 졸업장을 받을 수 있고 유명 대학도 쉽게 갈 수 있는데 공부는 뭐하러 죽어라고 해야 한다는 말인가?
대자보가 각 학교마다 나붙기 시작하던 이달초 전북의 한 고교에 붙은 대자보에는 "우리도 명문데 들어가고 싶은데 능력이 부족하고 부모님이 평범하셔서 비싼 말은 못사준대"라는 글귀가 씌여 있었다.
얼마 전 수능시험을 보고 대학에 합격한 딸에게 "그동안 수고했다"라는 인사대신 "말 한필도 못사줘서 미안하다"라고 용서를 구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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