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영 서원대 교수

[황혜영 서원대 교수] 평소 라디오를 즐겨듣는 편은 아니지만 주말이나 집에서 조용히 보내는 시간이면 종종 듣는 라디오 방송이 있다. <세상의 모든 음악>이라는 프로인데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하는 본방송에 맞춰 듣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은 여유 있게 방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아무 때나 다시 듣기로 듣는다. 이 프로는 평소 쉽게 듣기 어려운 세계 여러 나라의 분위기 있는 곡들도 좋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진행자가 들려주는 여운이 있는 메시지와 예술가의 삶과 작품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들도 잔잔히 마음에 스며들어 긴장을 풀어주고 지친 일상에 여유와 은근한 위로를 준다.

 한 달쯤 전인가 다시듣기로 이 프로를 듣는데 거기서 미니멀리즘에 대해 소개해주었다. 원래 시각디자인에서 시작된 개념인데 그것을 삶에 적용해볼 때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어 본질에 좀 더 집중하고자 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미니멀리즘은 예전에도 들어봤지만 그동안은 무심코 지나쳤는데 이번에는 그 의미가 계속 마음에 여운으로 남았다. 그래서 인터넷 검색도 해보다가 사사키 후미오의 책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가 눈에 들어와 읽어보기도 했다.

 이 책에서 작가는 물건이나 활동이나 할 것 없이 삶의 모든 면에서 미니멀리즘을 실현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에 비해 요즘 내 삶은 뭔가로 가득 차 있고 바쁘고 정신이 없다. 매일 일에 쫓겨 허덕이는 것 같은데 정작 항상 일이 밀려 있고 기한을 넘기기 일쑤다. 물건도 여기저기 가득한데 뒤죽박죽 정돈이 안 되어 있다. 물건뿐만 아니라 시간과 에너지, 모든 생활에서 불필요한 것을 조금씩 덜어내어 정작 자신에 좀 더 정성을 기울이고 집중하고자 하는 미니멀리즘이 내 삶에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차에 바로 얼마 전에는 이 프로에서 '떨켜'라는 단어를 처음 듣게 되었다. 평소 써본 적도 없고 또 들어본 적도 없는 것 같은 이 순우리말은 이혜경의 <우리들의 떨켜>의 제목에 나온다 한다. 떨켜는 낙엽이 질 무렵 잎자루와 가지가 붙은 곳에 생기는 특수한 세포층으로 떨켜가 생기면서 나무가 잎으로 수분을 보내는 것을 중단하여 나뭇잎은 자기 안의 수분을 다 쓰고 나면 낙엽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나무가 잎을 떨어뜨리는 것은 오히려 나무 전체가 위험에 빠지는 것을 막아주며 떨켜를 통해 나무는 잠시 쉬어가고 몸을 추스르며 왔던 길을 돌아보고 힘을 비축한다는 것이다.

 비우는 것이 진정 채우기 위한 것이라는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미니멀리즘의 의미가 떨켜의 작용 덕분에 조금 더 와 닿는다. 떨켜의 작용으로 나무가 잎들과 결별하고 잠시 휴식하며 몸을 추스르는 것이 희망의 봄을 맞아 새로운 잎을 활짝 피우기 위한 준비이듯이, 부차적인 것을 삶에서 줄이는 미니멀리즘도 더욱 순화된 본질을 꽃피우는데 필요한 비장한 떨켜의 작업이 아닐까 생각하니 미니멀리즘과 떨켜, 두 의미가 어느새 하나의 속삭임으로 울려온다. 떨켜의 계절, 좀 더 소중한 가치를 돌보기 위해 내 삶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들을 줄여나가는 조금은 미니멀리스트로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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