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사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가결 열쇠는 새누리당 비박(비박근혜)계가 쥐고 있다. 집권당 국정 책임자를 탄핵하는 결정적 역할을 야당이 아닌 같은 당 비주류가 가진 이 기막힌 현실이 2016년 마지막 달 대한민국의 정치다. 이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이 돌고 돌아 오는 9일 대통령 탄핵 표결에 참여키로 했다. 그동안 참여 여부를 놓고 '한다' '안 한다'를 번복하는 오락가락 행보 끝에 당론을 거부하며 참여를 결정했다. 이 역시 거리로 쏟아져나온 국민의 요구, '촛불민심'의 힘이다.

비박이 고민 끝에 '탄핵 열차'에 함께 탔다 하더라도 그들의 몸사림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200만 명(주최 측 추산)가까운 민초들이 비정상적인 나라를 정상으로 되돌려보자며 냉기가 올라오는 거리로 뛰쳐나와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데도 표결 참가와 불참을 왔다 갔다 하며 정국을 더 혼란스럽게 했다. 이런 비박의 일관성 없는 처신은 결국 야권의 애초 탄핵 발의 일정을 무산시켰다.

자신들이 가세할 경우 탄핵 가결은 무난하다고 호언장담했던 비박은 박 대통령의 "국회가 협의해 나의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결정해달라"는 한마디에 무너졌다. 대통령이 자신의 거취를 여야에 맡긴 만큼 탄핵 발의보다 협상이 먼저라는 주장으로 단일대오에서 발을 뺐다. 오히려 '내년 4월 퇴진, 6월 대통령선거'라는 새누리당의 당론에 힘을 보탰다. 그런 모습에 생존 모색의 꼼수라는 비아냥이 뒤따랐다.

그러던 비박이 3~4일 전국적으로 232만 명(주최 측 추산)의 국민이 참가, 촛불이 아닌 들불로 번진 민심에 방향을 급선회했다. 설령 박 대통령이 스스로 '4월 퇴진'을 밝혀도 여야 합의가 없으면 탄핵 표결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야권이 대통령의 진퇴를 놓고 더 이상의 협상이 없다고 한 만큼 표결 참여를 기정사실로 됐다. 비박이 강경 방침으로 돌아선 건 나름대로 정치 셈법에 따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정권 연장, 자신들의 국회의원 배지 유지에 어느 게 더 유리한지 계산기를 쉼 없이 두드린 결과라는 분석이다. 그런 속내는 탄핵 표결 참여 입장을 나타내면서 밝힌 "정치권 논란과 상관없이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국민의 뜻이 한치 흔들림 없다는 걸 확인했다"는 것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그런 유·불리 셈법도 노도와 같은 촛불민심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촛불민심은 박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민이 쥐여준 권한을 행사치 못하고, 자신들의 앞가림만 하려는 정치권을 향해서도 타오르고 있다. 비박 역시 얄팍한 정치 계산을 끝내고, 민심을 따르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제 나라의 운명을 결정지을 탄핵 표결이 3일 앞으로 다가왔다. 숨죽이며 지켜봐야 할 시간이다. 야권은 "이미 3당 합의로 탄핵안을 발의한 순간 돌아갈 다리를 불살랐다"는 말로 결기를 세우고 있다. 여당도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논의를 표결 결과를 지켜본 뒤 하자며 중단했고, 친박 주류까지 나서 박 대통령의 퇴진 일정 제시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자신의 소신과 의지를 분명히 하는 정치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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