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탁 충북보건과학대 교수

[김종탁 충북보건과학대 교수] 세상의 모든 이치에는 양면이 존재한다. 동전에 양면이 있듯이 사람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충신이 있는가하면 간신도 있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잘 듣는 사람도 있다. 듣는 사람은 짧은 질문을 하고 상대의 긴 대답에 귀를 기울인다. 가끔 상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추임새를 넣어 조용히 경청한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길게 질문하고 상대의 말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기의 주장을 관철하려 한다. 우리 주변에서 상당수 사람들은 말하는 쪽이고 듣는 사람은 드물다.

 소설 '삼국지'에 말하기보다 듣기를 좋아하면 천하를 얻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촉나라의 영토인 서천은 인근 세력들의 끊임없는 위협으로 멸망의 위기에 처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서천 땅의 권세가 장송은 위험에 처한 서천을 살려내기 위해 조조를 찾아간다. '세금 잘 바치고 충복이 될 터이니 서천을 지켜 달라'는 말을 전하기 위해 찾아갔던 것이다.

 그러나 조조는 장송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오히려 '서천의 개는 태양을 보고 짖는다'고 조롱만 한다. 하늘을 보기 힘든 깊은 산속이라 해를 보면 개가 놀라서 짖는다는 뜻이다. 도움을 청하러 온 장송을 두고 외진 산골짜기의 촌놈쯤으로 여기고 외면한 것이다. 이에 장송도 밀리지 않고 대꾸를 한다. 조조 당신이 저술한 '맹덕신서' 정도의 책은 서천의 코흘리개 아이들도 모두 외운다고 쏘아 붙인다. 조조도 듣지 않았고 장송도 마찬가지로 상대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고 서로 자신의 주장만 앞세운다. 찾아간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성과 없이 두 사람은 냉랭히 갈라서고 말았다.

 조조에게 외면당한 장송은 돌아오는 길에 유비를 만난다. 유비는 그를 환대해 가는 곳마다 장송을 위한 연회를 베풀면서도 자신의 마음 속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저 '덕분에 잘 지낸다'는 정도의 말만 되풀이 한다. 유비의 말을 기다리다 지친 장송이 서천 땅의 정치적인 이야기를 할라치면 손을 내저어 말린다. 모든 내막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속내는 끝내 드러내지 않는다.

 장송의 이야기를 듣고 맞장구만 친다.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장송은 이야기하고 유비는 묵묵히 듣는다. 유비는 장송과의 만남을 통해 서천 땅을 얻고 마침내 꿈에 그리던 촉한을 세운다. 말하기보다 듣기의 위대함이 아닐 수 없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남의 말을 잘 듣는 편이라 생각하지만 가끔은 상대의 말을 내가 처한 현실과 비교해 개인적인 감정을 담아 해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요즘처럼 힘겹고 지친 세상살이에 지극히 형식적이거나 듣기 좋은 말로 포장해 내 진심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타인의 마음을 열게 하는 듣기의 자연스런 능력이 어느 순간부터 사라진 듯싶다.

 누군가의 마음을 열고 그 사람의 내면까지 들여다보는 경청의 힘이 위대한 줄은 알지만 그런 경청의 힘을 얻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인간은 입이 하나요, 귀가 둘이다. 이는 말하기보다 듣기를 두 배 더 하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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