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일보 사설] 전 국토를 강타하고 있는 조류인플루엔자(AI) 피해가 극심하다. 고병원성에서 그치지 않고, 고고병원성으로 치닫는 추세다. 이미 신고 접수가 전국적으로 100건이 넘었고, 양성 농가가 240곳 이상이 됐다. 발생 지역이 8개 시·도 30여 개 시·군으로 확대됐다. 농가 피해는 500여 곳에 다다르고, 살처분된 가금류만도 2500만 마리가 넘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전체 사육 가금류의 10%가 살처분될 경우 손실이 49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는데 사태 확산으로 피해액이 최대 1조4000억 원대에 이를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했다.
방역에 곤욕을 치르는 당국이 할 수 없이 백신 도입을 검토하고 있지만 백신을 접종한다 하더라도 그 효과가 곧바로 나타나지 않는 데다 그로 인한 간접 피해 예상 역시 커 선뜻 시행치 못하고 있다. 개발에서 접종까지 4개월 가까이 걸리고 백신을 쓰면 바이러스가 가금류 몸속에 그대로 남아 변종 바이러스가 생길 수 있으며 사람이 AI에 걸릴 위험성이 있다. 백신을 사용할 경우 AI 청정국 지위를 잃어 가금류 수출이 어렵다는 것도 고민이다.
이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당국의 안일한 대응, 늑장 대처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기껏 소독약을 뿌렸는데 AI 발생 농장 87%에서 효능이 떨어지거나 검증이 안 돼 생산 중단, 회수 조치된 약품을 썼다는 역학 조사 결과가 나왔다. 범정부 차원의 관계 장관회의가 열린 것도, 위기 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한 것도 최초 신고 접수 후 한 달이 다 돼서였다.
그러는 사이 H5N6형 바이러스 외 유전자 형태가 다르고 잠복기까지 더 긴 H5N8형 바이러스까지 퍼졌다. 고육지책으로 살아있는 닭의 유통을 금지했다가 다시 허용하고, 위기 경보가 격상되자 다시 금지하는 등 대책이 오락가락했다. 경기 성남시는 당국의 이 같은 지침을 '비정상적'이라며 거부했다. 이 같은 일련의 상황은 방역 골든타임을 놓친 걸 그대로 드러냈다.
방역 골든타임 실기는 이웃 일본과 비교할 때 더욱 대조된다. 일본은 야생 조류 분변에서 AI 바이러스가 검출되자마자 매뉴얼에 따라 즉각 최고 단계의 위기 경보를 발령하고 총리가 직접 상황을 점검했다. 그 결과 일본에서 AI로 살처분된 가금류는 100만 마리가 채 되지 않는다.
피해는 곳곳에서 일어났다. 산란계 살처분으로 달걀이 모자라자 사재기 현상이 나타났고, 국내 제빵 선두업체는 달걀이 들어가는 19개 품목을 잠정 생산 중단했다. 충북도는 매년 12월 31일 하던 새해맞이 축제를 올해엔 하지 않기로 했고, 충주 증평 진천 괴산 음성 보은, 충남 천안 아산 서천 역시 해맞이 행사를 취소했다. 보은 옥천은 순환수렵장마저 폐쇄했다.
매년 되풀이 연례행사가 되다시피 한 AI 피해 예방을 위해 백신 개발과 겨울철 가금류 사육 중단 대신 이를 금전적으로 지원하는 휴업보상제 도입 같은 근본적 개선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충북에서만 살처분 동원으로 AI 감염 가능성에 노출된 고위험군이 1458명이라 하니 특단의 대책이 절실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