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서울취재본부장

[이득수 서울취재본부장] 촛불은 자신의 몸을 태워 어둠을 밝힌다고들 말한다. 자신을 희생해 정의를 구현하겠다는 혁명가의 삶을 연상시키는 문장이다. 얼마 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퇴임을 앞두고 한국 특파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내 경험이 대한민국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이 한 몸을 불사르겠다"고 한 말과 같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촛불이 어둠을 밝히는 것과 반 총장이 이 한 몸을 불사르는 것은 주체가 전혀 다르다. 초가 마치 의지를 갖고 있는 생물체인 양 밤을 밝히기 위해 자신의 몸을 태운다는 것은 어법상 맞지 않는 표현이다. 그렇게 보면, 어둠을 밝히는 것들은 모두 의지가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석유는 자신을 태워 어둠을 밝히고, 장작은 자신을 태워 주위를 따뜻하게 한다고 해야 한다. 시적인 표현일 수는 있지만, 이런 말들은 주술관계가 맞지 않는다. 촛불은 엄연히 사람이 불을 당겨 태우는 것이며, 도구이자 목적을 위한 소모품일 뿐이다.

 촛불이 이 나라를 휩쓸었다. 휩쓸다는 표현도 사실 적절치 않다. 휩쓰는 건 바람이니까. 오히려 휩쓰는 건 촛불을 끄는, 촛불의 천적이겠다. 그러고 보니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한 보수 정치인의 말도 떠오른다. 한 동안 이 때문에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말이야 맞는 말이다. 바람이 불면 촛불은 당연히 꺼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광화문 광장에 켜진 촛불은 일회용컵에 둘러싸여 웬만한 바람에도 끄떡없다.

 지난 24일 크리스마스와 겸친 토요일 서울 덕구궁 대한문 앞에서 광화문네거리 사이의 12차선 도로는 보수우파 진영의 태극기로 메워졌다. 종로-새문안로 건너편 세종대왕 동상 앞에는 탄핵 촛불시위대가 모여 있었다.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었지만 일촉즉발의 긴장을 지울 수는 없었다. 왜 이런 대결이 벌어져야 하는가. 촛불과 태극기의 세력판도에 따라 탄핵심판이 달라진다는 믿음이 이미 시중에 팽배하다. 광장의 시민들은 누가 조정하는가. 그들은 어떤 경로를 거쳐 그곳에 나왔는가. 그 많은 시위용품들은 누가 만들었고, 그 돈은 어디서 나오는가 따져봐야 한다.

 탄핵은 헌재로 넘어갔다. 결정을 기다리면 된다. 대통령의 행위가 탄핵심판을 받을 만큼 헌법을 위반한 것인지 아닌지는 헌재가 판단할 것이다. 촛불은 "국정농단과 비리, 사익추구를 방관하고 국민주권과 대의민주주의 원칙을 위반했으니 즉각 사퇴하라"고 요구한다. 반면 박 대통령을 옹호하는 태극기 측은 "늘어가는 주름살을 숨기고 싶어 보톡스도 맞고 싶고, 성형수술을 할 수도 있다. 재단을 만들기 위해 기업들에게 후원금을 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전 정권들에서는 이미 다 했던 일들이다"라고 항변한다.

 인류가 만든 최고의 정치체제인 대의민주주의를 존중해야 한다. 대중이 나서서 결정한다면 국회나 법원은 필요 없다. 법학교수나 법무부 관료가 만들고 판결하면 된다. 이 나라는 수천 명, 수만 명이 사는 도시국가가 아니다. 의견을 표출했으면 그 결과를 지켜보는 것도 민주시민이 해야 할 일이다. 대중을 동원하고 조종하는 세력이 있다면 이들도 역풍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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