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순 복대초 교장·시인

[박종순 복대초 교장·시인] 2016년 12월 30일 그러니까 정유새해를 이틀 앞둔 날 교장실 문 밖에서 나를 부르는 낯익은 소리가 들렸다. 며칠 전 전화가 왔길래 올 수 있으면 오라고 건성 일러주었는데 이렇게 찾아오다니 놀라서 발걸음이 굳는 듯하였다. 한 손엔 가방을 다른 한 손엔 그 무거운 음료수를 사들고 홀로 계단을 올라 내 사무실이 있는 이층까지 어찌 왔을까! 소년은 지체 부자유장애라서 한 쪽 다리가 휘어 걸음 걷기가 불편할 뿐 아니라 왼쪽 눈이 사시여서 사물을 제대로 보기도 쉽지 않은데... 그만 가슴이 아리고 한편 대견하여 얼른 소파에 앉도록 하였다.

 이 소년을 만난 것은 2000년 필자가 특수학교로 전근되어 팔다리 없는 소년 구원이와 함께 담임을 하게 되었다. 일반학교에서만 지내다 처음 특수학교에 가니 생소하고 장애 상태에 맞게 아이들을 지도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 때마다 마치 조교처럼 장애가 더욱 심한 친구들의 손발이 되어 휠체어를 밀어주고 나를 타이르며 도와준 소년이다. 그 학교를 떠나온 지도 10여 년이 되었는데 소년이 늘 먼저 전화를 걸어와 내 안부를 묻고 그 당시 제자들이나 어머님들의 소식도 소상히 전해주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몇 해 전 스승의 날 즈음 전화가 왔길래 "교장선생님이 되어 산외초에 근무하고 있다" 했더니 무척 기뻐하며 학교에 와 보고 싶다는 것이다. 설마 그 먼 길을 올까 했는데 며칠 후 미원까지 버스를 타고 와 마중가서 데려온 것은 꿈만 같은 일이다. 송구스런 것은 소년의 어머니가 '우리 선생님 교장 되셨다'고 떡을 맞추어 예쁜 보자기로 싸서 들려 보내신 것이다. 지켜본 교직원들이 감동하여 박수를 쳐준 일이 엊그제인데... 이렇게 그날 2차 방문을 받은 것이다. 어떤 어려움에도 나를 버리지 않고 찾아온 소년의 발걸음에 나의 손발이 또 부끄러웠다. 사람이 찾아온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나의 일생에 소년의 삶을 끼워 넣고 함께 바람을 맞고 하늘을 보는 것이다.

 언제나 대화를 리드하며 그간 미루어오던 눈 수술을 하기로 했다는 정말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얼마 전 펴낸 나의 첫 산문집 '사람의 향기' 앞쪽에 '너의 밝고 고운 눈을 주님께 의탁하며'라 써서 책을 건네주니 놀라면서 감동한다. 자신의 장애를 비관하지 않고 늘 긍정적으로 주변에 밝음을 전해주는 소년의 향기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명문대를 다닌 것도 특별히 책을 많이 읽은 것도 더구나 담임인 나의 가르침도 넉넉지 않았는데, 곰곰 생각하니 역시 가정의 따뜻함에 마음이 닿았다.

 집에는 할머니가 같이 사시고 아버지는 직장일에 열심이며 소년의 어머니는 늘 밝은 얼굴로 그 아들을 자랑스러워했고 자주 웃으셨던 기억이 스쳐 일어났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가정은 모든 것이다. 언제라도 돌아갈 수 있는 따뜻한 집이 있다면 그 사람은 결코 불행하지 않다. 다시 새해를 맞았다. 다른 것보다 우선하여 좋은 부모가 되고자 하는 조그마한 계획이라도 세워보았는지 이 땅의 모든 부모들을 향하여 기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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