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서울취재본부장

[이득수 서울취재본부장]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과 특별검사의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관련 수사를 동시에 받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 위한 기자간담회나 기자회견을 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언론이 특검이나 헌재의 원고 측 주장을 주로 실어주고 박 대통령 측의 주장은 경시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더 중요한 것은 헌재가 탄핵의 심판 결정을 여론의 향배에 따라 달리할 것이라는 예상이 대두되면서 촛불시위대에 맞선 탄핵반대 시위대 세력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도 엿보인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기자간담회 형식의 의견 표명은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우선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이 청와대 경내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을 보좌해야 할 비서실장, 수석비서관, 경호실장 등이 배석한 기자간담회를 하는 게 법률위반이라는 지적이 대두된다. 그 동안 사실 언론을 경시해 온 박 대통령의 대언론관도 비판의 근거로 돌출되고 있다. 출입기자들과는 직무정지되기 전에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을 초청한 오찬 간담회를 한 두 차례 한 것이 전부였다.

 기자회견도 연초에 연례행사로 한 것 외엔 없었다. 역대 대통령에 비하면 최악이다. 기자회견도 사실상 정해진 순서에 따라 미리 알려준 질문 내용을 짜 맞춰진 각본대로 연기하는 형식이었다. 문제를 미리 입수하고 시험을 치루는 것과 다름없다. 큰 일이 터졌을 때 애용한 대국민사과 등은 언론사나 기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고, 자신의 필요에 의해 한 것이다. 그랬던 대통령이 지난 1일에 이어 몇 주 만에 또 기자간담회 개최를 검토한다는 것은 필요하니까 기자들을 동원해 보겠다는 얘기 밖에 안 된다. 기자들을 홍보맨으로 보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1일 기습적으로 개최한 신년인사회라는 이름의 기자간담회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박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을 거의 훈시하는 듯한 자리였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소통 습관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반복한 것도 문제이지만, 취재 도구 지참을 금지한 부름에 무비판적으로 달려간 기자들도 문제다. 착한 학생들처럼 두 손을 모으고 다소곳이 듣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굴욕적이기도 하다. 독자들은 "그런 간담회는 거부했어야 한다"고 항의했고, "왜 기자들이 자격정지된 대통령의 일장훈시를 하는 자리에 참석했느냐"는 비판을 퍼부었다. 언론계 인사들도 출입기자단 간사(기자들 의견을 전달하는 역할)가 당연히 거부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아무튼 대통령은 이제 청와대 안에서 간담회든 기자회견이든 기자들을 모아놓고 메시지를 내놓을 계제도 아니다. 기왕에 헌재 탄핵심판도 열리고 있고, 특검 수사도 진행 중이니 여기에 출석해 자신의 입장을 당당하게 밝히면 된다. 블랙리스트가 왜 필요했는지, 세월호 7시간 동안 무슨 일들을 했는지, 기업들에게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후원금을 내라고 한 이유 등을 당당하게 직접 소명해야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기자회견·간담회, 대국민담화발표 등은 한가하고 사치스럽게 비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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