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

[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 누가 방학을 깨진 거울에 비쳐보고 있나? 요즘 아이들을 가리켜 동심의 실종이라는 엄청난 질책을 쏟아낸다. 아이는 되레 어른 걱정이니 따지고 보면 부모도 자녀도 서로 훌륭한 보호자다. 방학을 앞둔 학생과 학부모 생각은 딴판이다. 아이는 신나는데 어떤 부모는 풀이 죽었다. 부모와 소통한 시간이 많을수록 사춘기가 돼도 말문을 술술 연다. 서로 편안하게 함께하는 것에 익숙해야 방학은 행복하다.

 '여보! 이것 좀 읽어줘요.' /화장대를 돌아 /주방 숟가락 통까지 뒤져도 /안경 못 찾은 아내에게 /자존심 내려놓는 소릴 듣는다. /'여보 안 들려, 너무 작아요.'/라디오 볼륨을 자꾸자꾸 올리자니 /이제 /내 손이 떨린다./'정신 차리세요. 그건 라디오가 아니라 가스밸브…' /어느 새 /땀으로 범벅됐다./아내도 나도./

 여러해 전, 모 잡지사 청탁을 받아 쓴 '세월 그리기'다. 시가 무엇인지도 모를 초등학교 저학년짜리 딸이 글자한자 고치지 않고 이 시의 전문을 방학숙제로 베껴냈다. 나름, 왜 그렇게 성급 했을까? 그 후 32년, 아직 섣부른 물음을 던지지 못하고 있다. 왜 멀쩡한 아이 과제를 부모가 대행하고 '안 돼, 안 돼'란 낱말로 잔소리만 늘리나. 아이 입에서 떨어지기 무섭게 이리 뛰고 저리 뛰도록 엄마 스스로가 길들여진다.

 무엇이든 알아서 먼저 해버리는 얼치기 부모야 말로 균형을 잃은 애착이다. 그러면서 버거워 미쳐 버리겠단다. 도대체 자녀와 함께 밤하늘 별을 본 건 언제인가. 아이들도 도움이라고 느낄 땐 고마워하지만 압박에는 스트레스로 시달린다. 방학이 중요한 건 마음 놓고 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딱 들어맞는 공식은 없다. 실수를 반복하다 보면 시나브로 여물고 성장한다. 비록, 엉뚱할지라도 인정하고 응원하며 기다리는 느긋함, 아이를 찬란하게 만든다.

 '방학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무심히 흘린 말이 아이들에겐 청천병력 같다. 싱그러운 햇볕에 여름 과일이 익어가듯 제 키보다 훨씬 높은 자전거를 끌고 다니느라 그러잖아도 늘상 방학은 짧은 데 말이다. 집안일을 야무지게 도우려다 혼쭐난 일까지 꿈이요 생명이요 미래다. 아이들이 건강해야 주도적으로 자기 문화를 창조할 힘도 솟는다.

 부모 먼저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울 때 비로소 아이들 지혜가 열려 더불어 살아갈 공동체의식과 인성도 움쭉 자란다. 꼭 캠프나 여행이 아니더라도 기댈 수 있는 가정과 피붙이의 소중함을 담아둘 이런저런 기회를 자꾸 만들어 줘야한다. 좀 더디면 어떤가. 시끌벅적한 속에서 크고 부모의 온도만큼 넓어져 간다. 방학이야말로 평생 되새김할 아이들의 전부다. 얼마나 동화 같은 기간 인지는 아이 밖에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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