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경화 교원대 수학교육과 교수

▲이경화 교수
여사장, 여교수라는 말은 있어도 남사장, 남교수라는 말은 없다. 언어와 사고는분리될 수 없다고 하더니 여사장, 여교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고정된 이미지가있는 반면에 남사장, 남교수에 대해서는 별도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다.
그러니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이라는 제목의 영화는 있었지만 그에 견줄만한 남교수에 대한 영화는 만들어질 것 같지 않다.

미국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에서 그려지는 성공한 여성도 완벽주의, 결벽주의, 히스테릭한 성격 때문에 회사에서는 성공했지만, 주변의 사람들을 끊임없이 피곤하게 하고 개인적으로는 그리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사는 모습이다.

동양,서양을 막론하고 여자가 유리천장을 통과하여 지도자가 되기 어려우니 이런 이미지는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성 최고 경영자로 손꼽히는 김성주 사장은 자서전 성격의 수필집에서, 자신이 투명성을 강조하는 경영원칙을 고수했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였다. 술자리를 통한 향응, 봉투를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은밀한 거래 등을 생략하다보니 남들은 쉽게 하는 일을 모두 어렵게 처리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기업 문화를 제대로 파악할 기회가 없으니 요즘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지만, 아직도 국내 여성 최고경영자 비율이 현저하게 낮은 것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은 아직도 지도자보다는 보조업무자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김성주 사장의 경우조차도 부친이 최고경영자가 아니었다면 그 시대에 여성으로서 최고경영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외국이라고 사정이 다른 것은 아니다. 포춘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 중 여성이 최고경영자인 곳은 2000년 4개에서 2006년 10개로 늘었다.

두 배 넘는 성장이라고 기뻐하기에는 500이라는 수가 너무 크다. 선정된 기업도 미용관련업, 식재료 공급업 등 제한된 업종이 대부분이다.

유리천장을 통과하기가 왜 그렇게 어려울까? 대학생들에게 물으니 네트워킹 능력이 떨어져서 라고 답한 경우가 많았다.
대학에서의 성적은 언제나 여학생, 복학생, 남학생 순서인데 인간관계를 맺는 능력은 거꾸로 라는 것이다. 지도자에게는 일에 대한 전문성보다는 새로운 인간관계,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분석이다. 일리가 있는 말이어서 언제나 여학생들에게 강조해왔다.
그런데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한 외국학자와 창덕궁에서 나눈 뜻밖의 대화 이후로는 고민 중이다.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문화에 몰두하는 모양새가 밉지 않아서 벌써 세 차례나 전문성도 없이 가이드 노릇을 했던 터였다. 50대 중반의 노학자인 그는 창덕궁을 거닐면서 한국의 남자는 네트워킹 능력이 뛰어날수록 유능하다고 해석되지만, 한국의 여자는 네트워킹 능력이 뛰어나면 탐욕스러운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하였다. 그러한 경향은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것으로 보이며, 창덕궁을 거쳐 간 역사적 인물들을 보아도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조선의 왕과 왕비, 후궁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늘어놓으면서, 자신의 주장을 꽤 오랫동안 고집하였다.
정말 그럴까? 그러고 보니 위인전에서 뛰어난 네트워킹 능력을 발휘하여 왕, 장군, 학자, 상인으로 성공한 사람은 모두 남자이다. 여자는 조용히 현모양처의 길을 걷거나 모진 고문을 이겨내어 위인이 될 뿐이다. 여학생들에게 인간관계가 중요한데 한편으로는 혹시 탐욕스러운 야망을 가진 것으로 비추어질지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고 말해주어야 할까? 우리 사회에서 유리천장이 사라지려면 역시 무엇보다 뿌리 깊은 남녀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이경화 교원대수학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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