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영 서원대 교수

[황혜영 서원대 교수] 장 뤽 고다르의 미래사회테마 SF영화 「알파빌 혹은 레미 코숑의 이상한 모험」(1965)에서 레오나르 폰 브라운 박사가 창조한 빛의 문명 알파빌은 중앙통제기구 '알파 60'이 인간의 사고와 의식을 지배하는 도시다. 알파빌 주민들은 통제 가능한 평균 지능만 가지도록 허용되며 평균 지능을 넘어서는 인간들은 위험시되어 처형당하거나 통제구역에 갇혀 감시당하며 지배체제에 적합하도록 치료받는다. 외부국가 비밀요원 레미 코숑은 폰 브라운의 전쟁음모를 제지하는 임무를 띠고 알파빌에 잠입한다.

 알파빌은 언어를 통해 인간의 사고를 규제한다.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들은 알파빌에서 성경이라고 불리는 사전에서 삭제되고 대신 인간 의식을 통제하는 단어들이 새로 추가된다. 사람들은 삭제된 단어들을 잊어가는 것과 동시에 생각하고 느끼는 능력을 잃어가며 "저는 잘 지내요, 고마워요. 괜찮아요"와 같은 기계적인 말만 되풀이한다. "인간에게는 오로지 사랑, 믿음, 용기, 부드러움, 관용, 희생만이 있다. 다른 것은 당신들의 맹목적인 무지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처형당하기 직전 한 시인이 고발하듯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시적인 감수성은 알파빌에서 제일 먼저 말살되는 것이다.

 '왜'는 금지되고 '왜냐하면'만 허용된 알파빌에서 사람들은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당하며 원인은 없고 결과만 남아 관능은 허용되지만 사랑은 허용되지 않는다. 중앙통제기구 알파 60은 인간의 감정과 의식을 파괴하는 논리를 세워가지만 자신이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게 되자 결국 그것을 파괴하는 논리 구조에 따라 내적 모순으로 스스로 파괴된다. 동시에 폰 브라운이 빛에너지로 인간을 지배하던 알파빌의 통치체제를 다른 체제로 전환하고자 전체 도시에서 빛을 제거하자 인간들이 힘을 잃고 쓰러져간다.

 파멸로부터 인간이 살아남는 길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는 그 하나의 답으로 시적 감수성을 제안한다. 나타샤는 알파빌에서 사라지고 금지된 단어들을 읽고 기억해내며 감수성을 회복해간다. 그리고 더 본질적인 답으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레미 코숑이 죽어가는 나타샤를 알파빌에서 구출하는 동안 나타샤가 스스로 '사랑'을 느끼고 고백하는 순간 그녀는 비로소 구원을 얻는다.

 바코드가 새겨진 획일화된 인간, 기계에 의한 인간의 지배, 결과만을 중시하는 알파빌의 모습은 인간이 만든 문명의 혁명으로 인해 인간 스스로 소외되는 현대 사회의 근본적인 위기를 상기시킨다. 영화 처음에 등장하는 내레이션 "때로 현실은 너무나 복잡해서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때가 있다. 전설은 그러한 현실을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갈 수 있는 형태로 표현한다"가 말해주듯이 영화는 먼 미래의 이미지를 빌어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현실의 위기를 낯설게 함으로써 오히려 잊고 있었던 인간의 본질을 음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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