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사설] 박근혜 대통령 파면으로 5·9 대선이 유력시되면서 정치권의 대선 준비가 빨라지고 있다. 각 정당은 4월 초까지 대선 후보를 확정, 본격적인 대선 체제에 들어갈 방침이다. 바른정당은 오는 28일까지, 자유한국당은 31일까지, 국민의당은 4월 5일 각각 대선후보를 결정한다. 더불어민주당은 4월 3일이나 8일께 대선 후보를 선출한다는 계획이다.정의당은 이미 심상정 대표를 후보로 선출하고, 늘푸른정당도 이재오 대표를 대선 후보로 결정한 상태다.

만일 대선이 5월 9일로 확정되면 4월 11∼15일 선거인 명부작성에 이어 4월 15∼16일 후보자 등록 신청, 4월 25∼30일 재외투표소 투표, 5월 4∼5일 사전투표 등 선거 절차도 숨가쁘게 진행된다. 이번 대선에 출마를 선언하거나 준비중인 후보들을 보면 역대 어느 선거때보다 난립 양상을 띠고 있다. 각 정당별로 경선을 거쳐 후보가 확정되면 압축되겠지만, 문제는 유권자들이 후보들에 대한 충분한 검증을 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으로 대선이 급박하게 진행된다는 현실적 측면을 감안하더라도, 유권자들이 각 정당의 후보군에 대한 정책적·도덕적 검증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 사회마저도 박 전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 분열돼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다운 대통령을 선출하기보다, 자칫 진영 논리와 군중심리에 매몰된 감성 선거가 될 우려가 높은 게 사실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수많은 정치적·경제적·외교적·사회적 난제들에 직면해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조기배치에 따른 극심한 이해관계의 충돌, 국내·외에 잠복해 있는 경제 위기의 암초들, 탄핵과정에서 깊어진 진영간 대립과 갈등, 조기개헌을 둘러싼 논란 등 국가 명운을 좌우할 현안들을 슬기롭게 풀어가기 위해선 무엇보다 국정운영 능력과 도덕성, 정치적 혜안을 지닌 후보를 선택해야 할 책무가 크다.

그럼에도 현재 우리는 각 정당 후보들의 정책공약이나 도덕성, 국정운영 능력 등에 대한 객관적이고 철저한 검증보다는 진영 논리를 앞세운 정략적 행태에 휘말려 가고 있다. 각 정당 내부적으로도 계파간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경선 룰을 둘러싼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다. 정치권은 물론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서도 정책과 능력에 대한 검증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같은 상황에서 치러지는 대선이라면 우리는 또 다른 불행과 불안과 혼란의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는 심각성을 간과한 대목이다.

대한민국이 건국 이래 '국민적 신뢰 속에 퇴임한 대통령이 없다'는 국민적 자괴감과 국가적 불행은 비단 정치권만의 책임은 아니다. 유권자들이 소중한 주권을 이성적으로 냉철하게 행사하기보다 사회적 분위기와 정치권의 정략적 선동에 이끌려 감성적으로 투표한 책임도 적지 않다. 따라서 후보들에 대한 면밀하고 객관적인 검증을 위해 정형화된 틀을 과감히 탈피, 후보들간 자유토론을 확대하는 등 유권자들이 후보들의 정책과 사상, 국정운영 능력 등에 대한 현실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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