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 시인·수필가

[김혜경 시인·수필가] 노을을 누군가는 아름답다고 하고 누군가는 슬프다고 했다. 하늘이 밀감빛으로 익어가다가 용광로 쇳물처럼 붉게 끓어오르는데 온기가 없다. 겨울바다라는 멋진 단어 속에서 나는 찬바람을 먼저 읽게 되는 것을 보면 감성이 부족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오래전 누가 나를 떠났다. 혼자 바닷가에 가 이를 앙다물고 모래밭에 웅크리고 앉았다. 까맣게 하늘이 눈을 감아버릴 때까지 모래밭의 조개껍질처럼 엎어져 한 점이 되었다.
추웠다. 추위와 눈물은 반비례해서 바람이 거셀수록 눈물은 잦아들었다. 바람을 견디는 것이 눈물을 견디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바람을 견디고 있으면 이별은 노을빛처럼 아름다운 서사시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매서운 바람 속에서 하늘이 물들고 있었다. 밀감빛으로 용광로 쇳물빛으로 물들고 있었지만 그때도 여전히 온기가 없었다. 붉지만 오래도록 싸늘했다. 석양빛이 너무 아름답고 찬연해서인지 너무 추워서인지 이유가 뭐였든지 그 슬픔은 오래가지 않았다.
바닷가 석양의 이 신파 같은 이별에 아직도 속이 싸하다. 이제는 이별하는 요령을 조금은 안다. 추운 곳에서는 절대로 버려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차가운 곳에서는 누구든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번 여행에 따라나서면서 기억이 떠오를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날 얼마나 추웠는지 얼마나 절망적이었는지, 더더욱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것은 슬픔보다 찬바람이 더 매서웠다는 것을 말이다. 찬바람이 간단히 슬픔을 지우고 간다는 1차적인 생존의 조건에 나는 너무 쉽게 무릎을 꿇었다.
혈기왕성하고 감정의 기복이 널을 뛸 때도 나는 추운 곳이 싫었다.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것들이 싫었다. 따뜻할 것처럼 붉게 타면서 온기 한 점 없이 싸늘한 노을빛이 싫었다. 그런 눈속임이 싫었다. 번지르르 달콤하게 이별을 포장하는 눈속임 같은 것 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바람이 세다.
고운 모래위에 바람이 결을 만들고 갔다. 파도가 닿는 곳에는 물결의 무늬가, 바람이 닿는 곳엔 바람의 무늬가 꼼꼼하고 세밀하게도 새겨졌다.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그림으로 흔적 없이 사라질 무늬들이다. 내 젊은 날의 무늬가 흔적 없이 사라진 것처럼. 그날 나는 좀 더 슬퍼해야했다.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 것처럼 엉엉 울었어야 했다. 바람이 양 볼을 할퀴고 간다 해도 흐르는 눈물을 닦지 말았어야 했다. 석양과 이별은 결코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싸한 속을 쉬이 덥히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