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영 서원대 교수

[황혜영 서원대 교수] 현대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스위스 출신 프랑스 건축가, 도시설계사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1887-1965) 전시가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3월 26일까지 진행된다. 그가 만든 건축물 17점이 201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다행히 지난 토요일 서울 갈 일이 생겨 전시 일정이 끝나기 전에 전시를 볼 수 있었다. 보통 세계문화유산이라고 하면 오랜 전통이 있는 유적들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가 만든 현대식 건축물, 그것도 화려하지도 웅장하지도 않은 생활 건물들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하니 그의 건축이 도대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궁금하였다.

 20년 전에 나도 르 코르뷔지에가 지은 건축물 옆을 지나다니고 직접 들어가 보기도 했다. 파리 14구 남쪽에 위치한 파리대학기숙사는 커다란 공원 안에 전 세계 여러 나라 이름을 붙인 건물들이 군데군데 세워져 있는데 그 중 브라질 관과 스위스 관을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했다. 당시 브라질 관에 아는 한국 언니가 살고 있어 몇 차례 놀러가기도 했었는데 그때도 유명한 건축가가 지은 건축이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당시에는 별로 특별해보이지도 않았고 건축가 이름을 곧 잊어버렸다.

 사실 파리 도시 전체가 오래된 문화유적지처럼 고풍스러운 외관으로 되어 있는 것에 비하면 볼품없이 시멘트벽이 고스란히 드러난 영락없는 '현대식' 서민 아파트 같은 브라질 관은 오히려 생뚱맞아 보였다. 이미 식상하게 느껴지는 서민아파트 풍 건물이라 시큰둥하게 지나쳤었는데 그처럼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현대식 도시공동주택인 아파트가 바로 르 코르뷔지에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도시가 폐허가 되고 집을 잃고 방황하는 수많은 서민들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더 빠르게, 더 많은 집을 지어줄 수 있을까?'를 고심하던 그가 기존의 돌을 쌓아 벽을 만드는 건축기법 대신 철근과 콘크리트로 빠르고 저렴하게 집을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하고자 개발하게 된 공동주거단지가 오늘날의 아파트다. 물론 그의 제안은 기존의 건축에 대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들로부터 당시 격렬한 비난을 받았지만 현대식 주거혁명이라 할 아파트가 건축을 통해 인류가 당면한 난제를 해결하고자 한 그의 혁신적 생각에서 탄생하였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지금 생각해보니 브라질 관도 장식도 없이 시멘트가 고스란히 드러나 다소 초라해보이던 외관과 달리 각 방에 딸려 있는 빨강, 노랑, 초록 등의 밝고 경쾌한 원색으로 칠해진 작은 야외 테라스에는 오롯이 그 방에 머무는 사람을 위하는 듯한 세심한 배려가 녹아 있었고, 실내 바닥은 요즘 나오는 최신식 에어쿠션 운동화처럼 충격을 흡수하도록 푹신하게 만들어져 지날 때마다 편안하고 경쾌한 기분이 들게 해주었다. 다시 브라질 관이나 르 코르뷔지에의 다른 건물들을 보게 된다면 '인간과 자연, 인류 문명에 대한 존중'을 담아 건축가로서의 시대적 사명으로 고뇌하던 그의 정신 속에 거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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