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 충북여성문인협회장·수필가

 

[김혜경 충북여성문인협회장·수필가] 시답지 않은 글을 쓰면서 얻은 것은 공짜로 받은 책들이다. 벌써 몇 번 책장정리를 하며 더러는 지인들에게 보냈지만 아직 넘쳐나는 것이 책이다. 더더욱 내 책을 출간하고도 남에게 보내지 않아 쌓여있는 것도 많다보니 슬슬 가족들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 책들은 내방을 넘어 아들의 방을 점령하고 이제 슬금슬금 거실까지 기어 나오고 있다. 예부터 절대 버려서는 안 되는 것은 책이라고 배웠으니 버릴라치면 괜히 뒤가 켕긴다. 그중 몇 권은 마치 교과서를 파듯이 수없이 읽어서 낡은 것도 있고 더러는 첫 표지만 살펴본 새 책도 있다. 대책을 세워야할 때가 되긴 되었다.

 친구 하나가 이제 버리고 비우며 살자고 한다. 뜬금없는 얘기에 나는 가진 것이 없어서 버릴 것이 없다고 했다. 물론 마음을 비우며 살자는 뜻인 줄 나도 안다. 그래야 한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나는 비우며 살자는 말도 마음 비웠다는 말도 쉽게 나오지 않는다. 마음을 비우는 것처럼 어려운 일 또 있던가. 내게 참으로 어려운 일 중 하나가 마음을 비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속이 상해 있을 때 사람들은 마음 비우라는 말로 위로를 하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때론 욕심이 많아서라는 질책으로 들리기도 하니 말이다. 마음 비우는 일이 말처럼 쉽다면 세상은 벌써 법과 규제가 필요치 않은 온정이 넘쳐나는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늘 비우며 살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누군가가의 욕심에 주변 사람이 골탕을 먹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시답잖은 이 글쟁이에게도 마음을 비우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고 그 못지않게 어려운 일이 책장을 비우는 일이다. 힘들여 원고를 쓰고 출판을 하고 아무것도 아닌 내게 우편으로 발송해준 그 성의를 어찌 가볍게 버리겠는가. 책을 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이며 시간과 공이 드는지 너무 잘 알기에 하나하나 허투루 볼 것이 없다. 책속에서 작가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들여다  본다.

 영리한 사람들의 재치와 수더분한 시골 여인의 막걸리 같은 이야기도 한 됫박 듣고 세상을 떠돌며 내가 보지 못한 구석구석의 이야기도 배낭 가득 담아 본다. 한 번도 얼굴을 마주한 적이 없지만 어느새 절실한 친구가 되어 있기도 하고, 길을 잃고 고뇌에 차 있을 때 참으로 좋은 스승을 만나기도 한다. 혼자 떠나는 여행의 조용한 동반자가 되어 주기도 하고 잠을 잊은 밤엔 팔베개를 하고 자장가를 불러주는 애인이 되기도 한다.

 책을 버리려하니 그 좋은 친구와 스승과 애인과 동반자를 버리는 것 같아 수북이 추려놓은 책을 바라보고만 있다. 역시 비우고 버리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특히 책을 버리는 것은 마음 한쪽을 뚝 떼어내는 일인 것 같다. 마침 빈 사무실이 있어서 책장을 들여 놓고 책을 옮겨 놓기로 하였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사람들은 비우며 산다는 어려운 말을 쉽게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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