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영 서원대 교수

[황혜영 서원대 교수] 지난 4월 학회가 있어 경주에 간 김에 휴가삼아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경주에서 보냈다. 올라오는 날 보문호수 근처 예전에 가본 마음에 드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생각으로 갔더니 대기자가 수십 명이나 된다. 기다리는 데만 족히 1시간은 넘게 걸릴 것 같았다. 먹고 싶었던 메뉴는 포기하고 경주 구시가지에 있는 황남빵집에 들렀다 올 계획이었기 때문에 그 근처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1층짜리 나지막한 가게들이 이어진 정겨운 구시가지 골목길을 지나며 보니 군데군데 작은 식당들이 보였다. 마침 돼지찌개집이 괜찮을 것 같아 식당 옆 길가에 주차를 했다. 식당에 들어가려다 보니 바로 옆집에 <오늘은 책방>이라는 간판이 붙은 조그마한 카페가 있었다. 카페 앞에 세워놓은 아담한 안내판을 보니 헌책도 팔고 새 책도 판다고 적혀 있다. 식사하러 갈 때도 궁금하긴 했지만 식당에서 나오면서 옆집 카페를 다시 보니 무슨 책이 있나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차를 세워두고 걸어서 황남빵가게에 갔다 와서 차에 타기 전 책방에 들어가 보았다.

 카페에 들어서니 테이블이 하나 있고 조금 안쪽에 작은 방이 두 칸 있다. 한 칸은 헌책방, 다른 한 칸은 새 책방이다. 두 칸 모두 사방 벽에 책장 하나씩 들여놓을 정도 폭의 정말 아담한 공간이다. 두 책방을 차례차례 둘러보았다. 특히 헌책방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들 중에 읽어보고 싶은 책들이 아주 많았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두꺼운 번역본 3권 전질, 정기용의 <감응의 건축>, 유홍준의 <명작 순례(옛 그림과 글씨를 보는 눈)>, 포크너의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생텍쥐페리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1, 2>, 그 외 이것저것 읽고 싶은 책들을 고르다보니 종이봉투 3개 가득되었다.

 책도 책이지만 나에게 반가운 영감을 준 것은 책방에서 운영해오고 있는 책읽기 모임이다. 한 달에 한 번 두 명만 모이면 책모임을 한다고 한다(참고로 책방 주인이 젊은 부부다). 자신이 읽은 책(다 못 읽었으면 읽은 데까지)을 소개하고 마음에 와 닿은 구절, 느낀 점이나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는 모임이다. '비판, 반대, 논쟁보다는 만나 나누는 기쁨에 집중'한다는 책모임 철학이 다른 사람의 실수나 허물을 들춰내고 신랄하게 비판하는데 총명하기 쉬운 요즘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더불어 사는 삶에 바탕이 되는 책을 지향하며,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인지 고민하고, 생태를 생각하여 일회용품을 줄이고 쓰레기를 줄이며 헌책방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해나가는 이 독립책방이 지향하는 가치들도 마음에 잔잔하게 울려온다.

 기대했던 점심은 못 먹었지만 덕분에 낯선 도시 골목식당을 찾았다 우연히 발견한 작은 헌책방에서 책으로 맺어가는 따뜻한 만남과 나눔의 몸짓을 엿볼 수 있었다. 두 사람만 모여도 책읽기를 나누며, 할 수 있는 것부터 소중한 가치를 만들어가는 경주 책모임에서 지금 여기서 내디딜 만남과 나눔에 대한 힌트를 얻는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